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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교회, 위트니스 리 그리고「하나님-사람」의 논쟁에 대한 공개 서한

제이 고오든 멜튼(J. Gordon Melton)

공개 서한

지난 해에 저는 여러분 중 대다수와 같이 위트니스 리가 인도하는 지방교회와 영적 사이비 연구소(Spiritual Counterfeits Project), 더디(Neil T. Duddy), 그리고 「하나님-사람(God-Men)」이라는 그들의 저서를 출판한 출판사 사이의 법정 소송에 대해 염려해 왔습니다. 처음에는 한 그리스도인 단체인 지방교회가 다른 그리스도인을 법정 제소했다는 것에 대해 우려했습니다.
하지만 지방교회 인도자들이 그들을 비방한 책의 배포를 막고 그 책의 오류를 알리기 위해 덜 가혹한 모든 수단을 썼음에도 효과가 없자 마지막 수단으로 소송을 제기했음을 알고서 제 우려가 사라졌습니다.

저는 최근 지방교회로부터 그들의 생활과 믿음에 대해, 예년에 제가 미국 종교 백과 사전을 저술하며 하였던 것보다 더 엄정한 조사를 해달라는 의뢰를 받았습니다. 저는 1984년에 이 조사를 시작했고, 여러분이 참조하도록 조사 결과의 일부를 동봉했습니다.

조사하는 과정에서 저는 위트니스 리의 저술을 거의 대부분 읽었으며, 영적 사이비 연구소(SCP) 소속의 더디(Neil T. Duddy) 와 알렉산더(Brooks Alexander)의 장문의 증언집도 읽었습니다. 이런 조사는 제 그리스도인의 생애중 가장 고통스러운 경험이었습니다.
위트니스 리를 비방한 더디(Duddy)의 저서 ‘하나님 -사람’에 인용했던 위트니스 리의 글들을 점검하면서, 저는 더디(Duddy)가 계속해서 위트니스 리의 글 중에서 일부를 떼어다가 엉뚱한 문맥에 끼워 맞춘 것을 발견했고, 그 결과 위트니스 리가 말하고자 한 의도와는 정반대가 되는 글이 만들어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러한 처사는 위트니스 리의 주장들을 무시하여 생긴 것입니다. 또한 더디(Duddy)는 지방교회에서 실행하는 기도로 말씀 읽는 것(pray-reading)을 동양 종교의 염불과 동일시하는 어처구니없는 시도를 하였는데, 둘 사이에는 아무 관계가 없었습니다.

저는 증언들 중, 특히 더디(Duddy)의 증언을 읽는 가운데, 지방 교회에 적대감을 품고 있는 예전의 한 성도의 말 외에는 확인되지도 않은 발언을 기초로 한 ‘하나님-사람’이라는 저서를 통해 위트니스 리에 대한 본질적이고 명예 훼손적인 비난이 가해진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더니(Duddy)는 거듭거듭 예전의 지방교회 성도 한 사람의 말만을 취하여 그 말의 진위를 객관적으로 점검해 보지도 않고, 지방 교회의 재정관리에 의혹이 있다는 비방과 교회성도에게 심리적 고통이 있다는 비방과 예전 성도에 대해 교회가 불법적 행동을 취했다는 심각한 비방을 했습니다.

저는 영적 사이비 연구소(SCP)를 지원해 온 사람으로서, 특히 영적 사이비 연구소(SCP)가 그리스도인들에게 대치 종교에 대해 정확한 자료를 제공하려는 그들의 의도를 지원해 온 사람으로서, 이 연구 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진정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염려한 것은, 첫째, 지방교회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생활 태도에 대해 너무도 왜곡된 글들이 쓰여졌다는 것과, 셋째, 그러한 글들이 결국 인터바시티 프레스(Inter Varsity Press)와 같이 저명한 출판사에 의해 출판되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더 크게 동요된 것은 ‘하나님-사람’같은 책을 출판하는 일에 연관된 명백한 윤리성의 문제들입니다. 이 책에 너무도 빈번히 그리고 일관되게 나타나는 오류와 왜곡들은 ‘하나님-사람’이 학문성이 결여된 저작물임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조사 결과를 더디(Duddy)와 수엔겔러 벌라그 출판사를 상대로 제기 된 재판 중에 캘리포니아 오클랜드 법원에 제출(5월 28일)해야 함을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이 재판에 제출했던 방대한 조사자료 가운데서 일부 대표적인 부분만 여기에 동봉합니다. 그러나 조사자표를 기초로 하여 저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즉 우리 복음주의기도교계가 지방 교회에게 너무도 큰 잘못을 행했다는 것과 우리가 그들에게 입힌 피해를 복구시켜 주는 일을 즉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사람’의 내용을 공개적으로 전면 부인해야하며, 이 팩을 기초로 하여 쓰여진 기사와 전단의 사용을 즉시 중단해야 합니다. 또 우리는 지방교회의 가르침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야 합니다. 나 개인적으로는 지방교회가 그리스도인의 믿음에 관한 근본적인 교리에서 벗어난 부분을 한 점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모두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있어서는 많은 차이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계에서 서로를 연구하지 않고 쉽게 의견을 달리할 수 있는 교리 적인 관심들, 즉 교회론과 경건에 관한 것들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지방교회의 일에 대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숙고하기 바라며, 가까운 장래에 모든 재판기록이 출판되어서 여러분도 ‘하나님-사람’에 담긴 철저한 오류와 명예 훼손적인 본질에 관하여 저와 다른 조사자들이 내린 결론을 읽게 되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안에서 문안드리며,

고오든 맬튼(J. Gordon Melton)

추신: SCP와 지방 교회간의 계속되어 온 쟁론으로 말미암아 SCP의 다른 출판물에 대한 여러분의 신뢰가 떨어지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저는 ‘하나님-사람’을 제외한 SCP의 다른 출판물들은 괜찮다고 믿으므로, 여러분의 우려를 진정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최근 저는 SCP 편찬부의 로날드 엔로스(Ronald Enroth)와 책 한 권을 함께 썼습니다. 이 책 부록은 ‘하나님-사람’의 진상을 조사하는 중에 쓰여졌는데, 그곳에서 저는 여전히 SCP의 다른 출판물들을 교계에 추천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장래에도 그들의 책을 추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방교회: 그들의 가르침에 관한 고찰

지방교회의 신앙과 실행을 비방한 서적 몇 권으로 이해 야기된 심한 논쟁으로 인해 지방교회와 그 지도자는 지난 몇 년 간 이 논쟁에 휘말리게 되었습니다. 위트니스 리와 지방교회를 가장 심하게 비방한 것은 네일 더디(Neil T. Duddy)와 영적 사이비 연구소(SCP: Spritual Counterfeits Projcet)[1], 가 낸 ‘하나님-사람’(1981년 출판)인데, 이 책에서 더디(Duddy)는 지방교회가 근본적으로 성경을 신봉하는 정통기독교 단체인가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이러한 비난은 그 내용이 매우 심각했고 지방 교회 생활의 거의 모든 면을 다루기 때문에, 큰 법정 소송을 야기했고, 기독교계의 우려를 자아내었습니다.

제가 지방교회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초반인데, 그 전부터 저는 웟치만 니의 책들을 사 보았었습니다. 저는 그의 책에서 몇가지 세부 사항에는 동의할 수 없었지만, 그의 책의 내용은 제 마음에 들었습니다. 70년대 중반에 저는 시카고에 있는 지방 교회를 알게 되어 집회에 여러번 참석해 보았고, 거기서 위트니스 리의 책들을 구입했습니다. 몇 년에 걸쳐 그들을 방문해 본 것을 토대로 하여 저는 지방교회에 관한 내용을 제 저서 「미국 종교 백과 사전(1979)」.[2]에 삽입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시카고 지방 교회의 서점을 정기적으로 방문했는데, 그 서점은 기독교 서적을 매우 많이 갖추고 있었고, 특히 구하기 힘든 영국의 복음적인 서적들도 갖추고 있었습니다. 최근에 저는 지방교회에 관해 더 깊이 연구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한편으로 지방 교회에 대한 비방으로 야기된 논쟁 때문이며, 또 한편으로는 제가 자주 여행하게 됨에 따라 다른 도시에 있는 지방 교회를 방문하여 그들의 집회를 보고 참석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저는 방문객이었지만(저는 연합 감리교 소속 목사입니다), 지방 교회의 성도와 장로들은 언제나 그들의 집회에 저를 환영하였고, 제 모든 질문에 대답해 주었습니다.

동시에 저는 미국 종교연구소(ISAR) 소장 자격으로 미국의 여러 종교에 대해 폭넓게 저술 활동을 하였고, SCP의 출판물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SCP는 비그리스도인과 이단적인 기독교인을 상대로 하여 사역하는 수백개 단체 중의 하나입니다. 저는 SCP에서 신흥종교에 대해 출판한 서적의 수준이 대체적으로 다른 단체의 출판물보다 높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지방교회에 대해 잘 알게 되면서, 여러 서적이 지방 교회를 문제성 있는 신흥 종교 단체나 ‘이단적인 단체’로 간주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특히 SCP의 서적들도 그렇게 간주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3] 왜냐하면 저는 지방교회가 매우 정통적이라는 것을 믿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방 교회는 그들의 교리를 대부분 플리머스 형제회(Plymouth Brethren)에서 직접 따왔는데, 플리머스 형제회가 정통적임은 누구도 의심치 않습니다. 지방교회의 다른 점이 있다면, ‘한 지방에 한 교회’라는 원칙을 옹호한다는 것과 몇 가지 독특한 (그러나 수용할 만한) 경건의 실행들-기도로 말씀먹기-을 갖고 있다는 것과 그리이스 교부 신학(God-Talk)에서 쓰여졌던 고풍의 용어들-예를 들어, 연합(minigling)-몇 가지를 쓴다는 것입니다.

저는 지방교회를 둘러싼 논쟁이 가열됨에 따라, 지방 교회 비난 서적을 심도있게 읽게 되었으며, 이어서 위트니스 리의 책들과 지방교회가 반박하는 글들을 읽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조사결과, 저는 지방 교회에 대해 제가 내렸던 판단이 옳았음을 확신하게 되었고, 지방교회의 비난자들, 특히 네일 더디(Neil Duddy)가 지방 교회와 위트니스 리를 잘못 판단하여 기독교계에 왜곡되게 전하였음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지방교회에 대한 더디(Duddy)의 비평은 너무나 광범위하여 그것들을 제대로 평가하려면 그의 책의 두 배의 분량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성경의 권위에 관한 지방교회의 견해에 대해 가해진 비평만 가지고 논의하고자 합니다. 성경에 대해 위트니스 리가 가지고 있는 견해를 제대로 이해해야 지방 교회가 스스로를 복음적 기독교 단체라고 주장하는 것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더디(Duddy)가 위트니스 리의 성경관에 대해 공격한 내용들을 볼 때에 더디(Duddy)가 위트니스 리의 저술에 접근하는 방식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더디(Duddy)의 접근 방식과 그 책의 내용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예비적 고찰

근본적인 주제로 들어감에 있어서, 다음의 두 가지 고찰이 논쟁에 대한 일반적인 조망을 주리라 봅니다. 첫째, 논쟁의 성격에 두 가지 면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사람’은 위트니스 리와 지방교회에 대해 두가지로 나누어 비방하였습니다. 한가지는 신학적 문제입니다. 즉, 더디(Duddy)는 위트니스 리가 기독교 신앙과 사상에서 교리적으로 매우 빗나가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비방은 비 신학적인 것들입니다. 즉 더디(Duddy)의 책은 위트니스 리와 지방 교회에 대해, 몇 가지만 언급한다면, 다음과 같은 비난을 했습니다. 1) 재정적 속임 2)타 기독교 단체와 폭력적 충돌 3) 신자를 얻기 위해 부정직한 방법을 사용 4) 교회를 떠난 옛 교인의 집을 파손 5) 도덕률을 무시하도록 가르침 등입니다. 지방교회가 더디(Duddy)와 SCP와 ‘하나님-사람’의 출판사를 상대로 소송한 것은 이러한 두 번째 비방들 때문입니다.

법적 기록을 살펴볼 때, 이 소송을 이단 재판[4]이라고 규정짓는 것은 근거없는 주장입니다. 이 재판은 우리들이 비기독교 혹은 이단 종파의 서적과 가르침에 대해 신학적 평가를 내리거나, 부정적으로 신학적인 고찰을 할 수 있는 우리의 특권에 전혀 영향 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재판 결과는 우리가 그러한 비평을 쓸 때에 교양 있는 글로 쓸 것과 개인의 명예 훼손 및 중상 모략을 금하는 법 테두리 내에서 쓸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사람’은 위트니스 리와 지방교회 지도자들의 인격에 대해 여러 가지 비방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비방들은 신학적 논의를 훨씬 넘어섰으며, 명예 훼손적이고 중상적이었습니다. 지방 교회에 의한 이 소송은 수많은 더디(Duddy)의 주장들의 진실성에 의문을 제기 했으며, 더디(Duddy)는 자신이 한 주장들이 근거있는 것인지 확인해 보지 않았음을 선서 아래서 시인했고, 그 당시 그 근거를 확인할 수 없음도 시인했습니다.

둘째, 위트니스 리의 사상을 제대로 평가하려면 그의 글의 성격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체계적인 신학자가 아닙니다. 그는 준비된 원고를 기초로 하여 즉흥적으로 대중을 가르치는 뛰어난 교사입니다. 그의 책과 저술들은 거의 전부가 그의 강연 원고를 편집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설교적이고 경건적인 내용들입니다. 위트니스 리는 어떤 특정 문제에 대해 입장을 밝히는 소책자 외에는 어떤 신학적 논문을 쓴 적이 없습니다. 또한 지방교회가 미국에 나타난 지 이십 년 남짓하므로 (1984년 기준), 아직 교회 내에서 신학자가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그의 가장 체계적인 가르침은 복음 개요(Gospel Outline)[5]나 네 권으로 된 훈련개요(Outlines for Training)[6]같은 서적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불행히도 이런 책들은 더디(Duddy)가 ‘하나님-사람’을 완성한 후에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 책들은 단순히 위트니스 리의 저서 안에 어떤 글들이 나타나 있는지를 서술하는 책들입니다. 위트니스 리가 모든 지방 교회에 걸쳐 폭넓게 주장하고 가르치는 것들은 그의 서적이나 지방교회 간행물에 다시 정기적으로 나타납니다.

위트니스 리의 설교 의도는 그의 모든 저술 안에 나타나 있습니다. 일반 평신도 회중에게 복음을 가르치는 중심 목표를 이루기 위해, 위트니스 리는 기독교 가르침에서 좀더 실질적인 면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의 대부분의 책들은 성경 주해서들인데, 분해적인 해석보다는 해설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비록 해설 뒤에 분해적인 연구가 있기는 하나 쉽게 눈에 띄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는 형식적인 신학적 논점에 관하여는 거의 다루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그는 하나님에 대해 이론적인 교리들은 별로 다루지 않고 인간 사회에서 행한 하나님의 역사를 강조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하나님에 대해 뭔가 이론적인 것을 주장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다만 신학교수들과 달리 그 우선 순위나 관심사들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의 입장과 유형이 「창세가 라이프 스타디(Life-Study of Geneisis)」의 한 문장에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창세가 1장 26절의 말씀은 신격에 의해서, 신격 가운데 열린 회의가 있었다는 것을 나타내 준다. 우리는 ’가운데서(among)‘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이 삼일이시기 때문이다. 사람의 말을 사용하여 말한다면 ’하나님 속에 세 인격이 있다‘ 또는 ’ 세인격을 가진 한 하나님이다‘ 라고 말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것을 설명할 수 없다. 나는 단지 하나님은 삼일이시며 세 인격을 가진 한 분의 하나님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하나님의 이 세 인격이 회의를 거쳤으며 한 가지 일이 결정되었다」 이러면서 그는 창조에 대한 그의 논의를 계속합니다.[7]

더디(Duddy)는 위트니스 리의 저술의 설교적인 특성을 인식하고 있고 논평도 합니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더 나아가 자기의 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가정을 위트니스 리의 저술에 추가하는데, 그것은 위트니스 리의 사고세계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위트니스 리는 더디(Duddy)가 추가한 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추측을 명학하게 거부했으며, 거기서부터 추론된 더디(Duddy)의 결론들도 부정했습니다. 더디(Duddy)는 자주 이렇게 자신이 부여한 구조의 관점으로부터 위트니스 리를 비평했고, 자신의 결론을 직접적으로 반박하는 위트니스 리의 글들을 무시하였습니다. 위트니스 리가 믿음에 관해 체계적으로 저술한 적은 없더라도, 그것에 대한 그의 핵심적인 주장의 질서는 그의 저술들에서 직접 얻어집니다. 또한 지방교회는 그들의 믿음과 실행에 관해 공식적이 진술서를 출간했고, 바로 지방교히의 가장 탁월한 대표자의 가르침들에 견주어 그 일관성을 점검할 수 있습니다.

한가지 주목되는 것은, 대부분의 대중 강연자들처럼(대부분의 설교자들을 포함하여), 위트니스 리도 말씀 전하는 데 있어서 한 특정한 점을 강조하기 위해 과장법을 쓰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과장된 문장이 그 문맥에서 따로 떨어져 왜곡됨으로써 경우에 따라서는 위트니스 리의 생각과 전혀 반대되는 개념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이번 일에 있어서 더디(Duddy)의 가장 큰 결점은 그런 과장된 문장을 문맥을 떠나서 사용했고, 그럼으로써 주어진 주제에 대한 위트니스 리의 단도직입적인 언급을 무시했다는 것입니다. 다음에 그 예들이 인용되어 있습니다.

지방교회의 배경

더디(Duddy)는 윗치만 니로 시작하여 1920년대의 지방교회 운동을 소개하는 데, 그는 1922년에 플리머스 형제회(Plymouth Brethren) 형태의 가정 교회를 형성했습니다. 이어서 그는 다비(John Nelson Darby), 앤드류 머리(Andrew Murray), 그리고 펜 루이스(Jessie Penn-Lewis)가 저술한 서적들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1920년대 후반에 웟치만 니는그의 첫작품이자 주목할 만한 책인 「영에 속한 사람(The Spritual Man)」[8]의 저술을 끝내고 상하이로 옮겨 그의 독립적인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이 짤막하고 불완전한 역사적인 검토는 효과적으로 지방 교회를 복음적인 기독교 역사의 뿌리로부터 분리하였습니다. 이 역사와 ‘뿌리의’ 동일성은 웟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가 분명히 인정하는 바입니다. 나중에 더디(Duddy)는 위트니스 리가 복음적인 정통에 중점을 둔 저작자들의 사상에서 개념을 취한 데 대해 비평했습니다.

이와같이 지방 교회는 스스로를, 종교 개혁에서 시작하여 조지 팍스(George Fox)와 퀘이커교(The Quakers), 진젠도르프(Zinzendorf)와 모라비안교(The Moraviabns), 웨슬리(Wesley)와 감리교로 계속돼 다비(John Nelson Darby)와 플리머스 형제회(The Plymouth Brethren)까지 이른 성서적인 기독교 회복(복원)의 역사의 한 부분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전의 각 운동들은 교회에 대한 로마 카톨릭의 지배 기간 동안 잃어버린 것을 약간 회복하기는 했으나, 각 운동마다 아직 부분적으로 결함이 남아있었습니다. 각 운동들은 어는 특정 기간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하신 일을 대표하고 있으나, 반면에 각 운동의 제일 세대들이 지녔던 영적 실제를 잃게 되었고, 웟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가 본 진리에 대한 뚜럿한 증인으로서 위치에서 빗나가게 되었습니다. 이 복원의 하나의 중요한 주제는 카톨릭 감독제도의 교회 행정과 감독과 신부의 인도 직분에서 떠나 장로들에 의한 성경적 지방 교회 행정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다비와 형제회는 이 회복에 첫발을 내디딘 자들입니다. 교파주의와 성직제도를 거절하면서 다비는 안수받지 않은 장로들이 이끄는 지방 회붕의 교통을 택했습니다. 장로들은 주의 만찬에서 가르치고 인도하였습니다. 다비는 이 총체적인 교통 안에서 곳곳의 교회를 방문하면서 총체적으로 교회전체의 감독자와 전도자 역할을 하는 동역자 무리의 선두에 있었던 분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미국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들 교회(Disciples of Christ Church)를 설립했던 그 당시의 사람들과 같이, 다비도 하나님이 기독교의 문제 많은 분파를 거절하시며, 그리스도인을 교파주의(그리고 교파들)에서 불러내어 형제회[혹은 제자회(The Disciples)]의 하나의 교통안으로 넣으심을 보았습니다. 다비는 그 자신이 다른 하나의 종파를 형성한다고 여기기 보다는 오히려 성결적 기초 위에 하나의 진정한 그리스도의 교회를 다시 형성하여 그리스도인들을 그 조직된 표현 안으로 부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웟치만 니는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으며, 어렸을 적에 회중 교회(Congregational)와 감리 교회를 체험했습니다. 그의 생애의 초방에 그는 독립적인 영국의 복음주의의 전통들을 경험한 바 있고, 결국에는 배타적인 플리머스 형제회의 한 지류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플리머스 형제회에서 분리되어 나온 것은 그가 스팍스(T. Austin-Sparks)가 인도하는 또 다른 그룹과 ‘떡을 떼면서’였습니다. 지방교회 운동에서 웟치만 니와 합류되기 전에 위트니스 리도 플리머스 형제회의 교인이었습니다. 그들은 배타적인 형제회와 교제했는 데, 자주 교파나 교파주의 그리고 다른 교회들에 대한 호된 비평의 생각들을 나누었습니다.

지방교회를 이해하려면 다비와 그 동료들이 시작한 운동안에 있는 지방교회의 뿌리와 계속적인 참여를 떠나서는 안됩니다. 그들 대부분의 신앙과 (예를 들어, 시대주의) 조직과 실행들은 이 형제회에서 따온 것입니다. 지방교회 교인들이 즐겨 읽는 책의 저자들 중 지방 교회에 속하지 않는 저자들은 형제회와 또는 형제회의 깊은 영향을 받은 복음주의적인 저자들입니다. 웟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도 역시 이들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위트니스 리와 지방 교회가 이해하고 체험하는 이 회복의 역사는 이중적인 효과를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방 교회를 기독교 역사의 흐름의 중심에 놓았고, 스스로를 더 큰 기독교 역사의 한 부분이며, 또 그것에 연결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방 교회 교인들은 과거와 현재의 위대한 기독교 저자들과 인도자들의 공헌을 인지하며, 기독교계의 여러 교회들에 속한 그리스도인과 하나인 것을 인식합니다. 이러한 근거 위에서 지방교회 성도들은 교파가운데 있는 믿는이들과 교제할 수 있고 또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또한 지방교회가 이 시대에 하나님의 우선적인 움직임이 지방교회 역사를 통해서 그리고 그 안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지방교회는 이전 단계의 회복에서 많은 것을 취함과 더불어, 그것에 더 전진된 진리로서 한 지방에 한 교회라는 원칙을 기초로 하는 교회의 단일성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지방 교회와 형제회가 교회 행정의 형태에서는 유사하지만, 이 한가지 견해가 지방 교회를 형제회와 다르게 구분시킵니다.

실질적인 면에서, 한면으로는, 이 한 가지 교리가 교파 교회들과의 관계를 제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우주적인 교회를 지방에 근거한 합일의 가시적인 표현 안으로 인도한다고 믿습니다. 교파적인 분열은 잘못되었으므로, 지방 교회는 교파적인 구조와 협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하나됨은 모든 그리스도인을 포함하고, 또한 지방교회가 교파 교회에 참석하는 그리스도인이라도 형제 자매로 인식하기 때문에, 지방 교회 교인들은 모든 교파에 있는 개인적인 그리스도인들과 교제하는 데에는 아무런 담이 없다고 봅니다. 그래서 지방교회는 교제의 장소에 어느 그리스도인이라도 환영하고, 비록 그들이 단체적인 수준에서는 협력함이 없더라도 개인적으로는 지방교회에 속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지방 교회안의 성서적인 권위

지방교회의 역사적인 근원의 어떤 면을 볼 때, 위트니스 리가 이해하는 성경과 성경적인 권위에 대한 고찰의 시작점을 제시해 줍니다. 형제회와 같은 유(類)의 복음주의 단체들은 주로 성서 연구가들이었습니다. 웟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도 그러한 본을 따랐습니다. 웟치만 니는 좀더 총론적인 글을 쓰는 편이었으나, 위트니스 리는 주로 성경 해설자로 나타났고, 특징적으로 성경을 한 장 한 장 가르치는 데 집중했습니다. 그러나 더디(Duddy)의 논쟁은 위트니스 리가 성경을 보는 관점이 의문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사람’에 의하면, 위트니스 리는 성경과 그 권위를 복음주의 그리스도인이 인정할 수 없을 정도로 무시한다는 것입니다. 그외에도, 1) 객관적인 계시를 부인하고 2) 도덕률을 지키는 것을 경시하고(특별히 십계명), 이것으로 인해 성도들을 성서적인 윤리에서 떠나게 하며 3) 성경을 읽을 때 사고하고 연구하는 것과 생각의 역할들을 무시하고 4) 성경의 권위를 경시하며 위트니스 리 자신을 새로운 계시의 예언자 위치에 둔다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객관적인 계시

더디(Duddy)에 의하면, 위트니스 리는 객관적인 계시를 부인한다고 합니다. 성경의 권위를 격하시키는 것의 주요한 예로 더디 (Duddy)는 친트니스 리의 책 "그리스도냐 종교냐(Christ versus Re1igion)"에서 세 문장을 인용하고 (P.171) 있습니다 더디(Duddy)가 인용한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더디 (Duddy)가 인용한 부분을 포함한 전체 단락은 이 텔릭체로 했음]

로마서 7장 6절에서는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 므로 물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 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고 말한다. 이제 우리는 여기 서 언급된"의문"이라는 단어가 기록된 성경임을 알고 있다. 오늘 날 우리는 영 안에서 새로운 것으로 산 주님을 섬기는 것이지 기 록된 성경의 낡은 것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것을 담대히 말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나는 가장 용감한 사람인 사도 바울을 따르는 작 은 자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기록된 부호, 기록된 성경의 낡은 것 을 따라 섬기지 않고 영의 새로움에 따라 섬긴다 왜 그런가? 왜냐하면 영 안에 그리스도가 있는 반면에 기록된 부호에는 종교가 있기 때문이 다 이것이 그리스도 대 종교이다.
종교적인 것은 무엇인가? 종교적인 것은 건전하고 성경적 이고 원리적 이지만 그리스도의 임재가 없는 것이다 우리에게 그의 임재가 결여됐다 면 우리가 아무리 성경 적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종교적일 뿐이다 로마서 의 이 두 구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 대 종교에 대한 견고한 기초를 세웠 다 오늘날 우리의 봉사와 우리의 역사와 심지어 우리의 생명까지도 모 두 영 안에 있어야지, 다만 기록된 성경 문자만을 따르면 안 된다. 나는 위험을 무릅쓰고 이 말을 한다. 나는 사람들을 성경으로부터 떠나게 하 는 이단이라고 비난받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만 성경의 두 구절, 즉 로마서 2장 29절과 로마서 7장 6절을 언급한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이 구절의 "의문"이 기록된 성경을 언급한 것임을 인정한다. 이 점에는 더이상의 논란이 있을 수 없다. 그리스도는 종교에 반대된다. 그리스도는 기록된 기호에 반대된다. 우리는 옛날의 바리새인과 서기관 과 똑같이 기록된 부호를 옳게 인용하면서도 그리스도를 놓칠 수 있다 우리는 기록된 부호에만 너무 주의하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한다. 그렇 게 하면, 그리스도를 놓칠 가능성이 매우 많다. 안전한 길은 오직 "수건 을 벗은 얼굴로 주님의 영광을" 보는 것이다(고후 3 18).[9]

이 두 문장이 성서를 경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구절만 따로 볼 수 없습니다. 위트니스 리의 본문에는 이것이 성서를 경시하는 것이 아 니라 우상 숭배를 공격하는 데 쓰여졌습니다 여기서 우상 숭배란 기록 된 규례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있어서 하나님을 놓치고 사람이 만든 종교. 즉 구약의 율법이나 기독교 전통을 따르는 것입니다. 더디(Duddy)는 위트니스 리의 단락에서 두 문장을 잘라내어 위트니스 리 가 의미하는 것과 강조하는 것을 완전히 왜곡시켜 위트니스 리가 뜻하 는 것과 정반대되는 것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면 위트니스 리는 성경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계시라는 면에 대해서 어떻게 가르치고 있습니까? 그는 「우리는 성경이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완전하고 신성한 계시임을 믿는다.」[10] 라는 지방 교회의 신앙문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러면 위트니스 리가 강의할 때에 그러한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 까? 더디 (Duddy)는 아니라고 하면서, 「위트니스 리에 의하면, 기록된 성 경은 낮은 것으로서 우리는 그것을 따르는 데서 면제됐다고 한다.」[11] 고 말합니다.

위트니스 리의 저술을 단지 피상적으로 살펴본 후에 내린 더디 (Duddy) 의 주장에 대해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위트니스 리의 방대한 저술 은 대부분이 성경에 있는 책들에 관해 해설해 놓은 것입니다. 그는 그의 모 든 생애를 성경을 강의하고 가르치는 데 보냈습니다. 성경을 낮게 보고 기 록된 말씀을 경시 여기는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윗트니 스 리는 아주 특이한사람일 것입니다. 내가 아는사람 중 오직 위트니스 리만이 그런 길을 걷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좀더 자세히 조사해 볼 때 그가 과연 성경에 대해 무엇을 가르쳤습니까? 그의 가르침이 지방교회 의 신앙문을 따르고 있습니까 아니면 더디 (Duddy)가 내린 판단을 따르고 있습니까? 한 예를 들면, 그의 창세기 해설 중에서 위트니스 리는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경의 어떤 줄도 경시하지 말라. 성경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것이 다. 모든 단어와 구절과 문장들이 다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이다. 성경의 한 구절도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당신은 창세기 2장 5절과 6절을 기도 의 영으로 거듭거듭 읽음으로써 이것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당 신이 이러한 방법으로 이 구절들을 기도하며 읽는다면 당신은 반드시 공 급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신문이나 잡지의 어떤 구절들을 그렇게 읽는다면 당신은 사망에 빠질 것이다 세상의 간행물과 성경 사 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성경의 모든 단어가 거룩하며 하나님에 속 한 것이다.』[12]

그리고 나서 그는 노아에 관한 논의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계시를 받은 후에 노아는 즉시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다(히 11:7). 성 경에 의하면 믿음은 항상 말씀을 통한 믿음을 뜻한다. 로마서 10장 14 절에서 바울은, "그런즉 너희가...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라 고 묻는다. 말씀을 전파하지 않을 때 사람들은 믿기 어렵다. 믿음은 들 음에서 나온다. 때문에 로마서 10장 17절은,"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 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말한다. 분명 히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으며 들은 말씀을 믿었다. 당신에게 믿 음이 없다고 말하지 말라. 믿을수 없다고 말하지 말라. …[13]

그의 말들은 다음의 성경 강해 서두와 일치합니다.

성경을 주신 주님을 찬미하자! 이 성경 속에 담긴 생명, 신성한 생명, 영원한 생명을 찬미하자!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으로 수업할 기회를 주신 주님을 찬미하자. ...
성경이란 무엇인가? 본래 "성경 (BibIe)"이라는 단어는 "책"이란 뜻이 다. 그러나 이것은 무슨 책인가? 성경에서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호 흡으로 된 것으로..."(딤후 3:16 원문 참조)라고 말한다. 성경은 하나 님의 호흡이다. 성경은 단순한 하나님의 말이나 생각이 아니라 바로 하 나님의 호흡인 것이다. 호흡은 우리가 밖으로 내쉬는 것이다. 그리고 이 호흡은 우리 속에서 나간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호흡인 성경은 하나님이 속에서 밖으로 내쉰 것이다 성경 속에는 바로 하나님의 성분(凍分)이 담겨져 있다 하나님의 어떤 것이든지 이 신성한 책 속에 담겨 있다. 하 나님은 빛이시며, 생명이시며, 사랑이시며, 능력이시며, 지혜이시며, 모 든 것이 되신 분이시다. 하나임의 모든 것이 하나님 속에서 나와 성경에 담겨져 있다.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고, 영의 운을 열고 이 책을 대하기 만 한다면 우리는 즉시 하나님께 속한 것을 만질 수 있다. 단지 생각, 관 념, 지식, 글자, 문장들이 아닌, 이런 것들보다 더 깊은 것, 즉 하나님 자 신을 만지는 것이다.[14]

이어서 그는 사람들에게 이와같이 말합니다.

『성경은 신성한 개념들로 구성된 신성한 책이다.』[15 ]
『성경은 온전한 계시이다.』[16]

위의 내용들은 1970년대 초반 위트니스 리의 창세기 강해에서만 나타 난 것이 아니라 그의 다른 저서에서도 일관되게 나타납니다. 다음의 인용 구절을비교해 봅시다. 지방교회의 예배 방식에 관한 논의에서 위트니스 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너무나 자유스럽다고 비난할지 모른다. 그들 은 우리를 「자유로운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부를지 모른다. 그러나 조심 하라. 이 「자유로운 그리스도인들」이란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임을 믿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지 않고, 그가 구속을 이루 고 부활 승천한 것을 믿지 않는 현대주의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들 은 자유로운 자들이다. 우리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성경을 위하여 죽을 것이다.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이며, 우리 주 예수는 사람 으로서 성 육신되신 하나님이며 그는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 셨으며 육신적으로나 영적으로, 성경대로 부활하셨음을 믿는다.[17]

성경과 도덕성

위트니스 리의 저서들은 성경을 중심 삼고 그 권위를 인정하였으나 더 디(Duddy)는 이것을 인식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신자들을 인도하고 도덕적 기준을 세우는 데 있어서의 성경의 역할에 관한 윗트니 스 리의 관점을 그릇 전하였습니다. 그가 주장하기를 『위트니스 리는 성 경에 있는 윤리적 기준을 다만 도움이 될 만한 힌트라고 볼 뿐, 결코 결정 적인 안내 지침이라고 보지 않는다.』[18]라고 말하고, 『계속적으로, 윗트니 스 리의 가르침은 지방 교회 성도들을 성경적 윤리로부터 멀어진 행동을 하도록 이끌며 적임감과 적극적인 행등을 고무하는 가르침으로부터 멀어 지게 한다.』[19]고 덧붙이며. 이어서『 위트니스 리는 성도들 역시 신성하기 때문에 외부적인 도덕률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20] 고 주장합니다. 이 일상을 피력하기 위해 더디(Duddy)는 위트니스리의 「시편에 계시되고 예표된 그리스도와 교회」[21]제4장을 언급합니다. 위트니스리는 시편에서 영적 진보를 볼 수 있다고 전제하고, 그의 견해를 피력하기 위해 도표를 만들었습니다.「하나님-사람」의 42페이지에서 더디(Duddy) 는 그가 언급하고 있는 것이 위트니스리 책의 45페이지에 있는 도표의 재현이라고 했는데,조사 결과 더디(Duddy) 책에 있는 도표는 위트니스리의 것을 현저하게 바꾼 것이었습니다. 첫째로. 위트니스리의 도표의 일부분이 삭제되었으며, 더욱 심각한 것은 위트니스리가 시편을 인간적 으로 영감을 받아 쓰여진 곳과 하나님의 감동하심을 입어 쓰여진 곳으로 나누었다는 것을 암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몇 마디를 추가했다는 것입 니다 그러나 이 책(시편에 계시되고 예표된 그리스도와 교회)에서나 그 의 다른 저서의 어느 부분에서도 위트니스리는 그러한 구분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위트니스리가 시편의 여러 장들을 구분한 것은 기독교인들 이 일반적으로 하는 것과 똑같은 구약과 신약의 구별로서 율법을 그 중 심과 기초로 삼는 부분과 기름부음받은 자인 그리스도를 초점 삼는 부분, 즉 두 부분에 대한구분이었습니다. 두 부분모두 하나님의 감동하심으로 되었으나 그리스도가 율법보다 큽니다. 위트니스리는 단순히 다비 (Darby) 이래로 가르쳐져 온 시대주의(dispensationalism)를 다시 말 함으로 율법 시대 이후에 은혜 시대가 왔으며, 은혜 시대가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이라고 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위트니스리가 구약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예표 외에 도덕성에 관해 논의할 때, 도덕률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책임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예상하는 바와같이, 이 문제는 마태복음에 관한그의 논의에서 일관되게 보여집니다. 마태복음 5장 17절에 관한그의 논의를 예로 들어 봅시다.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는 선지자들을 통한 강화와 더불어 율법이 있 었다. 그런데 왜 여전히 천국의 율법이 필요한가? 그 이유는 옛 율법의 요구가 충분히 높지 않기 때문이다. 옛 율법의 요구는 완전하지 않았다. 살인의 예를 들어 보자. 옛 율법은 우리에게 살인하지 말라고 명하지만 (출 20:13), 화내는 것에 대하여는 한마디도 말하지 않는다. 만일 당신 이 어떤 사람을 죽였다면 당신은 모세의 율법에 의하여 정죄받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어떤 사람에게 얼마나 화내든지 살인하지 않는 한 모세의 율법으로는 정죄되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옛 율법의 결핍과 불완전함 을 본다. 그러나 천국의 율법의 요구는 모세의 율법의 요구보다 훨씬 높 다. 천국의 율법에 따르면 우리는 우리의 형제들에게 화내는 것이 금지되 어 있다. 21절과 22절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옛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 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회에게 말하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리라』. 그러므로 천국의 율법은 옛 경륜의 율법보다 더 높다.[22]

이러한 관점은 「생명의 인식(The Knowledge of Life)」에서 다시 피 력됩니다.

하나님의 법은 하나님의 규칙들로 구성되며, 그 본성은 거룩하고 의롭 고 선하다. 우리 밖에 있는 이 법은 무리어게 하나님께서 정죄하시는 것 이 무엇이고 그분이 의롭다 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한다. 그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규칙들을 좇기 위해 하나님께 서 정죄하시는 것을 거절하고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시는 것을 행할 것을 요구한다. [23]

이에 덧붙여 「하나님의 경륜(The Economy of God)」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구약을 율법과 선지자들과 함께 생각해 보자. 어떤 의미에서 구약은 율법과 선지자들이라고 불리워진다(마 7:12, 22:40). 그 둘 사이의 차 이점은 무엇인가? 율법은 변화될 수 없는 고정된 법칙이다. 예를 들면 율법의 한 항목은 사람에게 『부모를 공경하라』고 요구한다. 이것은 고칠 수 없는 규칙이요, 모든 사람이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부모를 공경하는 데 대해서는 안내자를 구할 필요가 없다. 이 율법은 고정되어 있다. 또 다른 규칙은 『도적질 하지 말라』이다. 그것 또한 고정적으로 수 립된 규칙이다. 『주님, 훔치는 것이 당신의 마음인지 아닌지 말씀해 주 십시오. 도적질에 대해서 지시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지시를 구할 필요가 없다. 이와 똑같은 원리가 십계명의 나머지 항목들에도 적용된다. 그러므로 율법은 모든 사람이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고정된 규칙이다. 어떤 사람도 예의일 수 없다. 그가 남자건 여자 건 노인이건 젊은이이건, 부자건 가난한 사람이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칙들이다.[24]

더디(Duddy)의 주장과는 반대로, 위트니스리는 일관되게 그의 독자와 청중들 앞에서 성경의 법이 그들의 절대적 행동 기준이며 안내서 임을 지지했습니다.

합리성과 생각의 사용

더디 (Duddy)는 또한 위트니스리가 성경은 영적이므로 인간의 합리적 인 이해를 초월한다는 가르침을 공격합니다. 더디 (Duddy)는 그 증거로서 위트니스리의 그러한 견해를 나타낼 만한 여러 문장을 그의 저서로부터 발췌해 내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용문이 나은 「그리스도냐 종교냐」 제7장은 생각의 사용에 대한 글이 아닌, 우리를 그리스도와의 관계로 이 끄는 성경의 역할에 대한 글입니다. 위트니스리는 종종 성경에서 계시하 는 말씀의 실제를 경험해 보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을 만났었습니다. 그들 은 성경을 알지만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기도로 말씀 읽기를 격려합니다. 『여기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모든 기 도와 간구로」 가지라고 말한다. 이것이 말씀을 기도로 읽는 것이다. 우리 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만 말고 기도로, 또 모든 기도로 취해야 한다.」[25]

그러나 그가 그의 논지를 연구, 생각의 사용, 교육과 관련된 문제로 돌 릴 때, 과연 그는 지방교회의 성도들에게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한 예로 「생명의 체험 (The Experienceof Life)」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인식하는 두번째 수단은 성경이다. 하나님의 창조는 단 지 하나님의 역사의 한 단면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계 시함에 있어서 충분할 만큼 분명 하지는 못하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하나님이 우주 가운데서 하시고자 하는 일과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철저하고 분명하게 우리에게 말해 준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 님의 뜻에 관하여 가장 분명한 계시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 성경을 연구하고 성경과 친근하게 되어야 한다.[26]

몇 페이지 뒤에서 그는 우리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기 위해 우리의 생각을 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교회에서 지각의 예리 함을 저버리는 것같이 여겨지는 사람들에 대해 다음과같이 비판했습니다.

많은 형제 자매들이 영적인 영역에 있어서 생각을 훈련하는 일이 심히 부 족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어떤 형제들은 증권 시장의 변동을 예견하고 이익과 손실을 계산하는 일에는 아주 명석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어 떤 자매들은 그 이웃과 수다를 떨 때에는 아주 능동적인 생각을 보인다. 그 러나 그들이 집회에 앉아 메시지를 들을 때에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27]

그는 세상적인 일은 물론 영적인 문제에서도 그리스도인은 그들의 생 각을 훈련할 책임이 있음을 피력합니다. 또한 그는 모든 문제에 있어서 생각의 훈련이 중요하다는 것을 거듭 말합니다. 교회의 젊은이들을 위 한 메시지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세상적인 일은 물론 영적인 문제에서도 그리스도인은 그들의 생 각을 훈련할 책임이 있음을 피력합니다. 또한 그는 모든 문제에 있어서 생각의 훈련이 중요하다는 것을 거듭 말합니다. 교회의 젊은이들을 위 한 메시지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자손들과 같지 않은데, 이는 우리가 문자 그대로의 좋 은 땅에서 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대신 오늘날 젊은이들은 공부해야 하며 좋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 공부하는 것은 땅을 경작하는 것과 동일 하며 대학을 졸업하는 것은 수확하는 것과 동일하다. 젊은이들이여, 공부 하는 것은 여러분의 의무이며 여러분은 그것을 해야만 한다.[28]

그런 다음, 요점을 놓친 사람들을 위해 그는 다시 땅에 대해 보충 설 명을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젋은이들은 오늘날 공부해야 하며 학업을 끝마쳐야 한 다. 만일 우리가 합당한 교회 생활을 한다면 우리의 모든 젊이들은 대학을 마쳐 야한다. 대학졸업에 실패하는 것은 씨를 뿌려 놓고 추수하지 않는 것과같다.[29]

위트니스 리의 권위와 성경의 권위

더디(Duddy)가 지방 교회가 성경의 권위를 그다지 인정하지 않는다고 생 각한 것은 윗트니스 리의 권위가 지방 교회 내에서 너무나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더디가 말하기를, 『비록 지방 교회가 윗트니스 리가 독재적 「교 황」임을 부인하고, 성경이 그들의 최고 권위임을 주장하지만, 의혹스러운 점 이 몇 가지 있다.』[30]고 합니다. 윗트니스 리가 지방 교회 내의 최고 교사인 것 은 분명하지만, 더디(Duddy)는 더 나아가 이렇게 비판합니다. 『지방 교회의 성도들은 윗트니스 리를 오늘날 살아 있는 유일한 하나님의 예언자라고 믿는 다.』 또한 윗트니스 리가 이러한 지방 교회의 믿음을 지지한다고 주장하면서 더디 (Duddy)는 윗트니스 리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합니다.

『내가 영 안에서 명령할 때, 주님이 나와 함께 명령하신다. 왜냐하면 나 는 주님과 한 영이기 때문이다. ... 이것이 나의 가르침인가? 아니다! 이 것은 성경 안에 있는 하나님의 계시이다. 이것은 수세기 동안 묻혀 있었 고 가려져 있었지만 하나님의 긍휼로 나타난 바 되었다.』[31]

윗트니스 리의 저서인 「어떻게 집회하는가(How to Meet)」에서 발췌된 이 인용문들은 「하나님-사람」에서 그릇 인용된 윗트니스 리의 문장 중 가장 심각 하고 무책임하게 그릇 인용된 문장입니다. 지방 교회 내에서의 윗트니스 리의 권위에 대한 더디(Duddy)의 논의에 끼워져 있기 때문에, 이 글들은 마치 윗 트니스 리가 자신이 대언자이며, 심지어 성경도 이것을 지지한다고 주장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이 문장들을 이들이 원래 있었던 책의 문맥 안에서 읽어 본다면. 이들은 더디 (Duddy)가 말한 것과 무척 거리가 멀다는 것을 발 견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두 인용문을 순서를 바꾸어 읽어야 하는데 왜냐하 면 윗트니스 리의 저서 안에 그러한 순서로 쓰여 있기 때문입니다.

두번째 인용문은 「어떻게 집회하는가」의 94페이지에 나타나며, 제49장의 마지막 단락의 시작입니다. 윗트니스 리는 성령의 더 큰 은사(신언)와 뛰어난 길(사랑)을 논의하는 바울의 고린도 전서 12장, 13장, 14장을 설명하 기 위해 아홉 쪽을 사용했습니다. 그는 논제를 요약하며 말하기를, 『이것 이(바울의 신언과 사랑에 대한 가르침) 나의(이 형제의) 가르침인가? 아 니다. 이것은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계시이다. 이것은 수세기 동안 묻혀 있었고 가려져 있었으나,하나님의 긍휼로 나타난바되었다. 고린도 전서 가 오늘날 우리에게 활짝 열렸다. ...』 하나님의 가르침으로 밝혀진 것은 윗트니스 리의 가르침이 아니라 바울 서신의 말씀, 즉 성경입니다. [32]

또 다른 인용구는 97페이지에 있는 단락끝에 나타나 있습니다. 윗트니 스 리는 고린도 전서 7장 10절을 설명하면서, 「혼인한 자들에게 내가 명 하노니 (명하는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고합니다. 이 구절에서 「나」는 바울임을 주목하십시오. 그래서 윗트니스 리는 그의 말을 결론지으며,『그 는(바울은)그의 영 안에서 주님과 하나였다. 그가 그의 영 안에서 명령할 때.그는「내가 아니라 주님이」라고 말할수 있었다. 내가 내 영 안에서 명 령할 때, 주님이 나와 함께 명령하신다. 왜냐하면 내가 주님과 한 영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합니다. 자기 문맥으로 돌아갈 때, 윗트니스 리는 분명 히 자기를 위해 어떤 예언자적인 위치를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바울 대 신 자신을 문맥에 사용하려고 시도했다는 것이 보여집니다. [33]

물론 윗트니스 리는 지방 교회 운동에서 존경받는 지도자적 위치를 가 지고 있습니다. 그는 미국내 운동의 창시자이고, 가장 은사 있는 설교자- 교사입니다. 많은 일세대 운동들같이 웨슬리가 초기 감리교를 통치하고 다른 창시자인 지도자들이 그들 첫 몇십 년 동안 새로운 교파들을 통치한 것같이 윗트니스 리도 그리 해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단지 그의 역할을 성경 교사로만 주장합니다.(윗트니스 리는 물론 지방교회와 연관된 독 립적인 교육 기관인 리빙 스트림 미니스트리(Living Stream Ministry) 의 대표자로서 형식적인 위치를 가지고 있으나, 그의 이러한 행정적인 역 할은 교회 전체 기관에 관련된 것으로 또 하나의 토론 제목이고, 이 장에 서 다루고자 하는 범위를 벗어납니다.)

결 론

여기서는 「하나님-사람」에서 더디 (Duddy)가 논의한 좁은 주제만을 취 하기는 했지만. 더디(Duddy)가 윗트니스 리를 그가 수년 동안 꾸준히 가 르쳐왔던 것과 정반대되는 가르침을 가르쳐 온 것같이 나타나게 만드는 발 표를 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주었다고 믿습니다. 윗트니스 리가 꾸준히 가르쳐왔던 것은,1)성서가 구술로 영감을 받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2)구 약과 신약의 도덕률을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지켜야 할 의무가 있으며 3) 정신적이고 이성적인 기능은 교회의 안과 밖에서 그리고 규칙적으로 성서 를 연구하는 데 쓰여지고 개발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4)윗 트니스 리는 자신을 하나님의 예언자나 대변자로서의 특별한 역할을 하는 자로 주장한 적이 없습니다.

또한 이 글은 더디 (Duddy)가, 논의되고 있는 주제에 대한 윗트니스 리 의 분명한 진술을 무시하며 계속적으로 문맥에서 벗어난 인용을 했다는 것 을 보여 주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주제를 놓고 더디(Duddy)가 반복해서 그렇게 한 것은 그의 책 전반에 걸쳐서 그와 유사하게 했음을 시사합니다. 사실상 시간과 공간의 제한으로 그러한 관찰을 다 보여 줄 수는 없습니다. 더디 (Duddy)는 그 자신이 윗트니스 리의 저서에 대한 합당치 못한 해석자 임을 보여 주었고, 「하나님-사람」은 기껏해야 윗트니스 리의 사상의 진술 에 흠집만을 내었던 저술이었습니다. 더디 (Duddy)가 한 일의 전반적인 결 과는 기독교사회에 지방 교회와 윗트니스 리에 대한 그릇된 인상과 해를 끼치는 오류를 제시했다는 것입니다.

「 하나님-사람」이 윗트니스 리를 다루었던 태도로 미루어 볼 때, 저는「하 나님-사람」과 거기서 비롯된 지방 교회에 대한 다른 공격들을 무시해 버리고, 좀더 능력 있고 책임감 있는 다른 기독교 학자가 윗트니스 리의 가르침 들을 검토하고 조사하는 일을 착수할 것을 제안합니다. 윗트니스 리를 비 판한 사람들이 말한 것처럼, 그가 의문의 여지가 있는 요점들을 가르쳤을 수도 있습니다. 비록 제가 어느 것도 찾아낼 수 없었지만, 심지어 그가 한 두 가지의 이단적인 면을 나타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더디 (Duddy)는 이 두 방면을 증명하는 일에서 모두 실패했습니다. 더욱이 더디 (Duddy)는 「하나님-사람」에 근거한 어떤 부정적인 판단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도 또 받아들여서도 안 되는, 윗트니스 리의 저서를 해석하기에 부적당한 자 임을 스스로 증명 했습니다.

반면에 제안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지방 교회의 신앙 고백을 모두 수용 하자는 것입니다. 그 신앙 고백은 그 핵심적인 요소에서 완전히 정통적입 니다. 또한 그러스도인들이 서로 허용하듯이, 신앙과 생활에 관한 덜 중요한 요점들에 대해 의견을 달리할 수 있는 똑같은 특권을 그들에게 허용하 기를 제안합니다. 장래에 더 유능한 자가 지방 교회에 대해 신학적으로 의문을 제기할 만한 점들을 찾는다면 그 때 더 논의하도록 하되, 그러한 논의가 지방 교회의 논쟁에 관련된 원한을 근거로 한 것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Notes

  1. 더디(Neil T. Duddy)와 영적 사이비 연구소(SCP).「하나님-사람(The God-Men)」(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1981), [이후로는. 더디(Duddy)]
  2. (Wilmington, NC: McGrath, 1979)
  3. 지방 교회에 대한 공격은 Robert 와 Gretchen Passantion, 「윗트니스 리와 지방교회」 (San Juan Capistrano, CA:기독교 연구소,n.d,); Walter Martin, 「새로운 사교들」(Santa Ana, CA: Vision House. 1980);그리고 Jack Sparks, Mindbenders(Nashvi11e: Thomas Nelson, 1977)등을 포함 한다.
  4. 「SCP의 친구들J에게 보내는 1985년 4월 10일자 편지에서 말하기를, 『취 지는(소송)… 한 반응 없이 어떤 사람의 가르침이 이단적 이라고 말할 수 있는 기독교인의 자유이다.… 이 취지에 대해 우리는 매우 옳다고 느끼고, 방어함 에 있어서 아주 자신감을 느낀다.』라고 했는데, 그와는 반대로 소송에 이단에 대한 문제는 전혀 연루되지 않았음. 논지는 명예 훼손임
  5. 윗트니스 리, 「복음 개요(Gospel Outlines)」 (Anaheim. CA: Living Stream Ministry, 1980)
  6. 「훈련 개요(Outlines for Training)」 (Anaheim. CA: Living Stream Ministry, 1979-1980)
  7. 윗트니스 리. 「창세기 라이프 스타디(The Life-Study of Genesis)」 (Living Stream Ministry, 1974) 제6장, P. 73. (이후로는 「창세기」)
  8. (New York: Christian Fellowship Publishers, 1968).
  9. 윗트니스 리, 「그리스도냐 종교냐」(Taipei: The Gospel Book Room. 1971) P. 171
  10. 주의 회복 안에 동역자들. 「지방 교회의 신앙과 실행」 (Anaheim, CA: Living Stream Ministry, 1978) p. 3.
  11. 더디(Duddy), P.42.
  12. 창세기 I, 제10장, P. 143.
  13. 창세기I,제28장, P. 405
  14. 창세기I, 제1장, P.9-10
  15. 창세기Ⅱ, 제61장.P.323
  16. 창세기Ⅱ, 제62장, P.337
  17. 「그리스도냐 종교냐」P.174
  18. 더디(Duddy). P.71
  19. 더디(Duddy).P.46
  20. 더디(Duddy).P.72
  21. 윗트니스 리, 「시편에 계시되고 예표된 그리스도와 교회」 (Anaheim, CA: Living Stream Ministry, 1972) p.37도표
  22. 윗트니스 리, 「마태복음 라이프 스타디」(Anaheim CA: Living Stream Ministry, 1977)제17장. p. 219 (이후로는 마태복음)
  23. 윗트니스 리, 「생명의 인식(The Knowledge of Life)」 (Anaheim, CA: The Stream, 1973) p.110
  24. 윗트니스 리 . 「하나님의 경륜(The Economy of God)」(Anaheim, CA: The Stream Publishers. 1968) P.165
  25. 「그리스도냐종교냐」P. 116
  26. 윗트니스 리,「생명의 체험(The ExPerience of Life)」(Anaheim CA: The Stream, 1973) p. 181
  27. 위와 동일함, P.196-197
  28. 마태복음,제22장, p.284
  29. 「마태복음.제22장,P.285
  30. 더디(Duddy). P.39
  31. 더디 (Duddy), P.40
  32. 윗트니스 리 「어떻게 집회하는가(How to Meet)」 (Taipei: The Gospel Book Room, 1970) p.94
  33. 위와 동일함, P.97

※ 주(註): 여기에 인용된 책 중에 한국복음서원에서 번역하여 출판한 책들에 대해서는 번역된 책의 페이지로 바꾸어 표기했습니다. 이 책들은「창세기」,「그리스도냐 종교냐」,「시편에 계시되고 예표된 그리스도와 교회」,「마태복음」,「생명의 인식」,「하나님의 경륜」「생명의 체험」등입니다.

고오든 멜튼(J. Gordon Melton) 씨는 미국 종교 연구소(ISAR) 소장이며, 산타 바바라에 있는 캘리포니아 대학의 객원 교수이다. 미국 종교 연구소는 북미 대륙의 종교 단체에 대해 학술적으로 연구하는 연구소 중 가장 큰 연구 기관이다. 그는 미국의 종교 단체에 관해 열 두 권 이상의 저서를 저술했으며, 그 중 「미국 종교 백과 사전」(총 3권,1979-1985)은 이 분야의 표준적 문헌 자료로 인정받고 있다. 그의 다른 저서들로는 「미국 종교 단체 사전」(1978), 「이단 종교의 경험」(1982),「전통 카톨릭 자료 전집」(1983),「왜 교회는 쇠퇴하며 이단은 성공하는가」(1985),「사이비 및 이단 종교 인물 사전」(1985),「이단 백과 사전」(1985)「 등이 있다.

멜튼(Melton) 박사는 또한 미국 연합 감리교(United Methodist Church)의 안수 목사이며, 북 일리노이 총회 회원이다. 그는 1975년에 노스웨스턴 대학에서 종교 역사 및 문학 분야에서 박사(Ph.D) 학위를 받았고, 1968년에는 개릿(Garret) 선교 신학원으로부터 교회사 분야로 신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또한 감리교의 역사에 정통하여 「세계 감리교 백과 사전」의 편찬 위원으로 역임하였고, 백과 사전에 많은 글을 게재하였다.

멜튼(Melton)박사는 현재 그의 아내 수제트와 딸 멜라니와 함께 산타바바라에 거주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산타 바바라의 미국 종교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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