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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을 위한 싸움 공지사항입니다.
작성자
청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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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pkorea@hanmail.net
등록일
2009/10/24 12:40
조회수
11,702
제목
대한예수교장로교 통합측 총회에 드리는 재심 신청 사유서

대한예수교장로교 통합측 총회에 드리는 재심 신청 사유서

 

우리를 창세 전에 선택하시고 그분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도록 예정하신 후, 시간 안에서 모든 것을 안배하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귀 총회와 위원회에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우리는 귀 교단 제 76차 총회(1991년)가 (지방)교회에 대해 결의하신 내용에 대해, 다음과 같은 사유를 근거로 귀측이 재심사 하신 후 '이단선언 철회 또는 해제 결정'을 내려 주실 것을 간곡히 요청 드립니다.

 

1. (지방)교회 전반에 대한 간략한 설명

 

가.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

 

(지방)교회는 워치만 니로부터 시작되어 그의 동역자인 위트니스 리로 이어졌다는 것이 객관적인 평가이다. 워치만 니(Watchman Nee)는 1903년 중국 복주에서 회중교회 목사의 집안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17세에 역동적인 거듭남을 체험했고, 즉시 자신의 일생을 주님께 헌신했다. 워치만 니는 성공회가 세운 '앵그리칸 트리니티 칼리지' 출신이며, 탁월한 영어 실력을 바탕으로 기독교 역사 전반을 망라한 약 3천 여 권의 기독서적을 독파하였다. 또한 그 당시 그의 고향에서 활동했던 전직 성공회 소속 M.E.바버 선교사를 통해 당대 유럽의 기독교 거장들과 교류하였다. 이 과정에서 속생명파와 형제회 노선이 그에게 상호 보완적으로 큰 도움을 주었다. 그의 신학사상은 총 62권의 <워치만 니 전집>(한국복음서원)에 잘 반영되어 있다. 그는 중국 공산화 직후 투옥되어 20년간의 옥중 생활 끝에 1972년 5월 30일 순교하였다.

 

위트니스 리(Witness Lee)는 1905년 중국 산동 지방에서 삼대 째 기독교 집안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19세에 거듭남을 체험한 후 약 8년 동안 형제회 모임에 출석하였다. 그 후 그는 워치만 니가 발간하던 문서를 통해 1934년부터 본격적으로 워치만 니의 사역에 합류하였다. 워치만 니는 그를 약 20년 이상 직접 온전케 했고 둘은 끝까지 신실하게 동역하였다. 위트니스 리는 1949년부터 1961년까지는 대만에서, 1962년부터 그의 생애 마지막인 1997년까지는 미국을 중심으로 사역하는 동안 일관되게 워치만 니로부터 보고 배운 큰 틀 안에서 사역하였다. 그의 메시지는 400여 권의 책으로 출판되었는데, 그 중에 성경 66권을 강해한 '라이프 스타디 전집(Life-Study)'과 (지방)교회의 조직 신학에 해당되는 8권으로 된 '신약의 결론'(총 4600쪽)이 있다.

 

나. 교세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사역을 귀히 여기는 소위 (지방) 교회 성도들은 전세계에 약 30여 만명(중국 본토 제외), 3000여 교회들이 있다. 한국에는 1966년에 소개되었으며, 현재 전국에 00여개의 교회들과 0만 0천명의 성도들이 실제적인 교회생활 속에 있고 200여 명의 사역자들이 있다.

 

다. (지방)교회에 대한 미국 교계의 평가

 

전세계 (지방)교회 성도들은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사역을 존중한다. 그러므로 (지방)교회 신앙검증은 곧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신앙평가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미국이든 한국이든 차이가 있을 수 없다. 항간에는 이들을 중국의 유교와 불교에 연관짓기도 하나 전혀 근거없는 주장이다. (지방)교회가 중국의 토착화된 기독교라는 일각의 평가도 정확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들은 둘다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고, 영국의 플리머스 형제회와 속 생명파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들은 존 넬슨 다아비의 모든 사상에 동의하지는 않으나, 자유주의에 대항하여 선포 된 근본주의자들의 신앙고백인 성경 무오성,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대속적 죽음, 육체적 부활, 육체적 재림을 확고하게 믿고 고백한다. 그러므로 저명한 이단 변증가이자 종교백과사전의 저자인 고오든 J. 맬튼 박사는 자신의 '미국 종교백과 사전' (Encyclopedia of American Religions)에서 (지방)교회를 참된 그리스도인들인 '플리머스 브레드린(Plymouth Brethren)' 과 같은 <독립 근본주의 계열>(Independent Fundamentalist Family)로 분류하고 있다(최신판, 523-525쪽).

 

 또한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책자만을 전적으로 출판하는 Living Stream Ministry(LSM)는 한국의 '생명의 말씀사', '규장' 등이 국제 회원으로 있는 '미국 복음주의 출판사 협회'(ECPA)에서 투표권 있는 정회원 자격으로 활동 중이다. ECPA 측은 회원사가 출판하는 책자들이 복음주의적인 내용을 담았음을 보장할 수 있도록 신규회원 가입시 엄격한 사전 신앙검증을 받게 하고 기존 회원들의 무기명 투표를 거쳐 확정한다. 한국복음서원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ECPA의 회원사가 된 LSM 발행 책자를 다만 한국어로 번역하여 국내에 보급하는 곳이다. 그렇다면 한국이든 미국이든 동일한 평가를 받는 것이 합당하다고 본다.

 

 유명한 이단변증기관인 CRI(Christian Research Institute) 대표인 행크 해나그라프와 AIA(Answers In Action) 대표인 그레첸 패산티노는 작년 8월에 재판과 관련해서 텍사스 대법원에 제출한 공식문서에서, "이단(cult)이라는 말이 교리적으로든 사회학적 개념으로든 지방교회에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이단변증전문가의 의견서를 제출한 바 있다. 이것은 이들 두 이단변증 기관이 과거 미국에서 앞장서서 (지방)교회를 양태론자로 공격해 왔었지만, 주님의 주권적인 안배로 쌍방이 수차례 만나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눈 후 나온 것이어서 큰 의미가 있다.

 

 그 외에도 한국 교계 내에 적지 않은 동문 목회자들을 배출한 풀러 신학교에서 '(지방)교회에 대해 이단성이 없다'는 내용을 포함한 다음과 같은 공개 선언문을 발표했다. 이 선언문 역시 풀러 신학교 총장 Richard Mouw 박사, 신학부 학장 Howard Loewen 박사, 조직 신학 교수인 Veli-matti Karkkainen 박사 등이 2년에 걸쳐 (지방)교회 인도자들과 폭넓은 대화를 나눈 끝에 나온 것이어서 더욱 주목된다.

 

"우리는 리빙스트림미니스트리의 출판물로 대표된 가르침들을 고수하는 사역의 인도자들이나 지방 교회들 구성원들 가운데 이단에 속하거나 이단과 유사한 속성들이 있다는 증거를 전혀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을 진정한 믿는 이들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의 같은 지체들로 쉽고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위와 같은 내용들에 근거할 때 우리는 미국의 대표적인 신학계, 기독 출판계, 이단 변증단체 모두가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신앙이 핵심 진리에 있어서 결코 이단이 아니며 참된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이라고 평가한다'고 결론적으로 말씀 드릴 수 있다. 우리는 이런 해명 자료 제시와 쌍방의 추가적인 대화를 통해 한국 교계의 주류교단 중 하나인 예장통합측에서도 동일한 이해에 이르게 되시기를 희망한다.

 

2. 핵심 진리 항목들에 대한 해명과 변증

 

가. 신론에 대한 해명과 변증

 

 1) 신인합일주의를 가르친다는 지적에 대하여

 

 예장통합측은 (지방)교회가 하나님과 사람의 신비적 연합을 말하면서 넘어서는 안될 선인 창조주와 피조물 간의 구별까지 무시한다고 오해 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관련 연구 보고서는 다음과 같은 위트니스 리의 주장이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 인간 사이의 뛰어 넘을 수 없는 차이를 인정하는 통합측의 신앙과 위배된다"라고 지적했다.

 

"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이 그분 자신을 공급해 주시는 것임을 알았다. 이제 우리는 그분이 무엇을 공급하시는가를 알기 위해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발견해야 한다. 바꾸어 말해서 하나님의 실제 내용은 무엇인가? 어느 사업가가 제품을 생산할 계획을 세운다면 먼저 제품의 재료에 대해서 분명히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본질은 영이다(요4:24). 전능하시고, 만유를 포함하시고, 우주 안에 충만하신 하나님의 본질은 바로 영이시다. 하나님은 만들어 내시는 분이고 그분의 목적은 자신을 제품으로 생산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분이 만들어 내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자신의 성분, 즉 영이라야 한다."(위트니스리, 하나님의 경륜, 한국복음서원, 10쪽)

 

 그러나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본다면, '자신을 제품으로 생산...' 등의 표현이 다소 거슬릴 수는 있으되 위의 내용에 진리 상으로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주 예수님은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10:10하)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말하는 '생명'은 무엇인가? 요한복음 위 바로 다음 장에서 주님은 '내가...생명이다'(요11:25)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생명이신 "주님 자신"을 그분의 양들에게 주시기 위함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이처럼 주님이 사람들에게 생명을 나눠 주신 결과는 사람이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며, 그 후 생명을 더 풍성히 공급받음으로 이들은 하나님의 맏아들의 형상을 본받은 많은 아들들로 산출된다(롬8:29)는 것은 다 성경이 말하는 그대로이다.

 

 하지만 위 내용을 비판적으로 읽을 경우, 두 가지 점에서 이의가 제기될 수 있다. 첫째는 '용어 표현'상 '하나님을...제품으로 생산' 등의 문구가 다소 불경스럽게 읽힐 수도 있다. 그러나 전후 문맥을 볼 때 그런 표현은 사업가를 예로 사용한 글 흐름의 연장일 뿐 필자에게 하나님을 의도적으로 폄하하려는 의도가 없음은 명백하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신 '한 알의 밀알이 죽어 많은 밀알을 내는 것'(요12:24) 정도의 의미로 소화해서 듣고 그렇게 이해했으면 한다.

 

 둘째는 통합측의 지적처럼 이런 표현이 혹시 창조주와 피조물의 차이를 무시하는 주장은 아닌가 라는 의구심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그 점은 전후 문맥이나 위트니스 리의 다른 책자 내용들을 볼 때 전혀 사실이 아니다. 지방교회는 성경을 근거하여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을 믿고 가르친다. 그러나 피조물인 인간은 결코 창조주가 될 수 없고, 경배의 대상이 되거나 전지전능, 무소부재 할 수 없다는 사실도 아울러 가르친다. 이 점은 예장통합측 토론자와 토론 할 때 충분한 근거와 함께 거듭 변증된 바 있다. 이 점은 (지방)교회측이 현재 미국 교계를 대상으로 발행 중인 신학 비평지 '확증과 비평' (Affermation & Critique) 2002년 10월호 '신화(Deification)' 특집 호에 실린 아래 내용에서도 재차 확인된다( http://www.affcrit.com/archives/ac_02_02.html ).

 

"우리는 하나님이 된다." 이 말의 의미는 우리가 거듭남을 통해 하나님에게서 난 이후 우리가 전적으로 거룩케 되며, 변화되고, 하나님의 맏아들이신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을 때까지 하나님으로 적셔지고(saturated), 침투됨(permeated)을 가리킨다. 이러한 하나님이 되는 신화의 과정에서 우리의 인성이 제해지거나 피조물로서의 우리의 신분이 바뀌지는 않는다. 우리는 영원토록 피조물과 인간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신화'는 우리가 신격(Godhead)의 일부가 될 만큼 높여지거나 하나님의 비공유적 속성을 나누어 가지는 것을 결코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가 충분하게 신화된 이후에도 우리는 무로부터 무엇을 창조할 수 없을 것이며 무소 부재하거나 전능하게 되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에게만 계시는 조건인 스스로 존재함의 경지에까지 나아가지도 않을 것이다(위 책, 17쪽).

 

 그런데 사실 우리 주변에도 위트니스 리와 유사한 내용을 말한 정통 신학자들이 없지 않다. 멀리는 아리우스 이단에 대항해 정통 교리를 사수했던 아타나시우스가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말씀의 성육신에 관하여'에서 '하나님이 사람 되신 것은 사람이 하나님이 되게 하기 위함이다(54:3).'라고 했다. 칼빈 신학교의 조직 신학 교수를 역임한 안토니 A. 후크마도 "하나님은 자기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그분(예수 그리스도)은 하나님이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그렇게) 되기를 원하시는 놀라운 모형이시다(개혁주의 인간론, 기독교문서선교회, 41쪽)라고 했다. 한국 교계에서 비중 있는 한 목회자도 "진정한 구원은 작은 예수가 되는 것이다.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는 말은...결국 예수님과 똑같은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옥한흠, 빈 마음 가득한 행복, 국제제자훈련원, 2005, 29쪽)라고 했다.

 

 결론적으로, 위트니스 리가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에 관련하여 언급한 것'은 위 다른 사례에서의 표현들처럼 허용 가능 한 범위내의 의미를 가지며, 결코 피조물이 창조주와 동등하다는 사상을 내포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므로 통합측도 그렇게 이해해 주시기를 당부 드린다.

 

2) '양태론을 가르친다'는 지적에 대하여

 

 예장통합측은 위트니스 리가 "하나님의 세 인격은 세 영들이 아닌 하나의 영(하나님의 경륜 p16)으로 세 인격이 한 영 안에 있는 '삼일 하나님'이 되었다고 한다. '삼일 하나님'이란 하나님은 성육신의 과정을 거치는 단계를 통해 세 인격이 하나로 발전된 것이라는 말이다(같은 책, p110)라고 했다. 이것은 양태론적 삼위일체관을 변형된 형태로 표한한 명백한 양태론이다." 라고 비판했다.

 이 부분은 사람들에게 '지방교회'하면 '양태론'이 머리 속에 떠오르게 한 바로 그 대목이고, (지방)교회측이 '우리는 결코 그렇게 믿지 않는다'라고 기회 있을 때 마다 강력하게 반박해 오고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양태론 비판은 세 가지로 나누어 변증 또는 해명을 하고자 한다.

 

 가) 정통 삼위일체는 '세 인격, 한영'인가, '세 인격, 세영들'인가?

 

 통합측이 위트니스 리의 삼위일체를 양태론이라고 한 것은 위에서 보듯이 그가 삼위 즉 세 인격을 세 영들이 아닌 하나의 영'(하나님의 경륜, p16)>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세 인격, 한 영'을 양태론이다 라고 보는 시각은 '세 인격, 세 영들'이 정통 삼위일체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 우리는 이 핵심 쟁점에 대해 변증하기 앞서, 이런 '세 인격, 세 영들'을 정통 삼위일체관으로 보는 시각에 대해 강한 의문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런 관점이 통합 교단의 공식 입장인지 아니면 이 연구에 중추적으로 참여했던 특정 목회자의 소신에 불과한지도 확인하고 싶은 것도 관심사 중 하나이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세 인격, 세 영들' 사상이 위트니스 리의 신론을 양태론으로 보는 핵심 기준으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이다.

 

 비판의 대상이 된 위트니스 리의 '하나님의 경륜' 16쪽 해당 부분을 이곳에 다시 소개하고 이어서 변증하고자 한다.

 

" 이 세 구절의 말씀(엡4:6, 고후13:5, 롬8:11)은 아버지와 아들과 그 영이 우리 안에 계심을 계시하여 준다. 그러면 몇 가지 인격이 우리 안에 있는가? 셋인가 하나인가? 우리는 서로 다른 세 인격이 우리 안에 있다고 말할 수 없고 오직 한 인격만이 우리 안에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우리는 다만 삼일이 우리 안에 있다고 말해야 한다. 하나님의 세 인격은 (분리된) 세 영들이 아닌 하나의 영이다. 아버지는 아들 안에 계시고 일곱 가지 놀라운 성분을 포함한 아들은 그 영 안에 계신다. 이 놀라운 성령이 우리 속으로 들어오실 때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공급되는 것이다. 세 인격이 한 영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아버지도 있고, 아들도 있고, 성령도 있다."(위트니 리, 하나님의 경륜, 1987, 16쪽).

 

위 '세 인격, 한 영' '세 인격, 세 영들'의 대립은 두 가지 방향에서 검증이 가능하다. (1) '한영 또는 세 영들'이란 표현을 삼위일체의 본질을 가리키는 의미로 보는 것이다. 이 경우에 '한영'이라고 한 위트니스 리는 아무 문제가 없으나 (본질을) '세 영들'로 말한 통합측(또는 이 연구에 참여한 특정 목회자)은 세 하나님들을 주장한 것이 되어 문제가 된다.

 

(2) 그러므로 통합측 토론자는 (지방)교회측과의 공개 토론에서 자신이 '세 영들'을 말한 것은 '본질'이 아닌 '인격'을 가리키는 것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만일 그렇다면 양측 모두 삼위가 '세 인격'이심을 공히 인정하면서도 한쪽은 '한 영'으로 다른 쪽은 '세 영들'로 보는 시각 차이는 어디서 연유된 것인가? 이 대목에서 우리는 "세 위격은 혼돈되는 일이 없이 '구별'(distinctio)되나 분리(separatus)되지 않고 동일한 본체를 가진다"(이종성, 삼위일체론, 114쪽)는 정통 삼위일체의 원칙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아래에서 볼 수 있듯이 위트니스 리는 이 원칙을 확고하게 믿는다.

 

"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과 영이 구별된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분리되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는 아버지에게서 아들을 분리시킬 수 없고, 그 영에게서 아들을 분리시킬 수 없다. 왜냐하면 셋 모두 동시존재하며 상호내재하기 때문이다. 요한복음에서 아들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분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그분 안에 있다고 하셨다(10:38, 14:10-11). 아들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아들 안에 있는데 어떻게 분리될 수 있는가? 또 주 예수님은 그분과 아버지가 하나라고 말씀하셨다(요 10:30). 이것은 아버지와 아들이 비록 구분이 되긴 해도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입증하는 더 전진된 증거이다. 아버지와 아들과 영은 구분이 되지만 분리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분들은 셋이면서 하나이기 때문이다." (위트니스 리, 신약의 결론- 하나님 편, 한국복음서원, pp 39-40).

 

 따라서 위트니스 리는 본질이 영이신 삼위가 구별은 되시나 결코 분리되지 않으시다는 위의 원칙에 따라 삼위가 '한영'이시라고 말한 것이다. 물론 이것은 한 영 안에 계신 성부, 성자, 성령이 위격의 혼동 없이 구별됨을 유지하신다는 전제를 가진 견해이다. 이 점은 위 인용문에서도 확인된다. 만일 이러한 해명을 통해 통합측이 지금이라도 위트니스 리의 신론을 바로 이해하게 되고 또 수긍할 수 있는 수준의 내용이라고 판단되었다면,  (지방)교회 양태론 시비는 이것으로 마무리되기를 희망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견해는 성경적이고 또 역사적으로 정통 신론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합측 토론자처럼 이러한 해명에도 불구하고 계속 위트니스 리의 신론을 양태론이라고 오해한다면 그것은 '구별되나 분리되지 않는 세 인격'을 속으로는 '구별도 되고 분리도 가능한 세 인격들'로 믿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분리된 세 영들'사상은 아래에서 보듯이 정통 교회에서는 받기 어려운 주장이다. 심지어 '세 인격들을 세 영들로 보는 사상 자체'도 교회 역사상 문제가 되었다.

 

 " 또 (C 목사가) "각각 한 영이라고 한 말은 셋에 속한 부분으로서 한 말이다" 고 주장한 것도 문제가 된다."성부의 영, 성자의 영, 성령이 셋(삼위)에 속한 부분이다"라는 주장은 삼위일체론에서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삼위가 셋에 속한 부분'이라는 표현은 삼위 하나님은 셋이 합하여 온전한 하나가 되며 성삼위 각위가 독자적으로 온전하지 못하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통합측 이대위, C 목사 삼신론 연구 보고서)

 

"9세기에 이르러서, '위격'은 '영"(Spirit)과 동일한 것이라는 의견이 개진되었다. 그래서 성부, 성자, 성령 이 세 이름은 하나님 안에 있는 세 영의 존재를 지시한다고 여겨졌다...(중략) 그리하여 고트사크는 853년에 스와송(Sissons)공의회에서 정죄되었다. 이 공의회는 단 하나의 신적 영의 소유자들로서 세 위격의 상호 점유를 재확인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위격'과 '영'이 동의어라는 사상을 배격했다'(제럴드 브레이, 신론,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2000년, 211-212쪽).

 

결론적으로,  "본질이 영이신 '세 인격'이 구별되나 분리되지는 않으심으로 '한 영'이라는 위트니스 리의 주장은 양태론이 아니다. 만일 이것을, 그렇게 말하면 양태론이 되는 것이고 반드시 '세 인격, 세 영들'이라고 해야 한다고 고집한다면 그 자체가 성경적 역사적 삼위일체론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나) 세 인격이 하나로 발전된 것?

 

 예장통합측 연구보고서는 위트니스 리가 '하나님의 경륜' 110쪽에서 삼일하나님을 말하면서 "'삼일 하나님'이란...성육신의 과정을 거치는 단계를 통해 세 인격이 하나로 발전된 것이라는 말이다(같은 책, p110)" 라고 했다고 비판했다. 이 지적은 아마도 '세 인격이 하나로 발전되었으니 이후로는 더 이상 세 인격이 아니다'라는 의미 즉 '세 위격의 영원성'을 무시한 주장으로 보고 비판한 것 같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충분히 검증이 요구될 사안이다. 그런데 문제는 위 인용문의 출처로 제시된 '하나님의 경륜' 110쪽은 물론 그 전후 페이지 어디에서도 위와 같은 내용을 발견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근거 없는 지적이다. 이 점은 통합측 토론자와 토론할 때에도 지적되었으나 그에 대해 별다른 추가 반박이 없었다. 아마 잠시 오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위트니스 리는 아래에서 보듯이 삼위가 각각 영원하심을 확고하게 믿는다.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아들 안에서 그 영에 의해 택하셨다(엡 1:4, 벧전 1:2下). 아들께서는 우리를 위해 아버지와 함께 그 영으로써 구속을 이루셨다(요 8:29, 히 9:14). 그 영께서는 우리 안에서 아들로서(요 14:26, 고후 3:17) 아버지와 함께(요 15:26) 역사하신다. 그분들의 역사와 나타나심은 경륜적인 것이지만, 그분들의 동시존재와 상호내재는 영원한 것이다. 셋 모두 본질적으로 영원하다. 이사야 9장 6절은 아버지께서 영원하시다고 말하고, 히브리서 1장 12절과 7장 3절은 아들이 영원하다고 말하며, 히브리서 9장 14절은 영원한 성령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아들과 영은 그분들의 존재하심과 존재에 있어서 연속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하시다."(위트니스 리, 신약의 결론-하나님 편, 한국복음서원, p38).

 

다) 소위 "수박 비유"에 대한 간략한 해명

 

통합측 연구 보고서 자체에는 소위 '수박 비유'에 대한 지적은 없다. 그러나 통합측 토론자와 (지방)교회측이 토론할 때는 소위 위트니스 리의 '수박 비유'를 놓고 많은 공방이 있었다. 즉 통합측 토론자에 의하면, (위트니스 리가) 온전한 수박은 성부 하나님, 쪼개진 수박은 성자 하나님, 우리 안에 들어온 수박은 성령님이라고 봄으로써 우리가 수박을 먹는 순간 '온전한 수박'과 '쪼개진 수박'인 성부와 성자 하나님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시고 성령님만 남으니 양태론이라는 지적이다.

 

 만일 위트니스 리가 '우리 사람 안에 성부와 성자는 안 계시고 성령만 계신다'고 했다면 위 지적이 옳다. 그야말로 공식에 맞아 떨어지는 양태론인 셈이다. 그런데 사실은 그 정반대이다. 즉 위트니스 리는 '성부, 성자, 성령님 모두가 (구별되나 분리되지 않게) 우리 안에 계신다'라고 일관되게 말하고 있다. 구별되나 분리되지 않게 존재하시는 세 위격의 영원성을 믿음으로 이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이다. 그렇다면 참으로 위트니스 리가 성부, 성자, 성령님 세 인격 모두가 우리 안에 계신다고 믿는 근거가 어디 있는가? 이율배반적이긴 하지만 이점은 위트니스 리를 양태론자로 비판하는 아래 차영배 박사의 글로도 증명된다. 또한 쌍방간의  공개 토론시 통합측 토론자도 이 점은 인정했다.

 

" 실제적으로 우리의 '체험 안에서' 세분은 하나이시다(64-신약2, 175쪽). 그러나 위트니스 리의 생각은 순식간에 또 바뀌어 세분(성부, 성자, 성령) 모두가 우리 영 안에 계신다고 한다. "오늘날 세 분 모두가 우리 영 안에 계신다. 우리는 세분이 분리되어 하나가 아니시라고 믿지 않는다.(64-신약2, 176쪽)"(차영배, 위트니스 리의 삼일론 논박, 교회와 신앙 2001년 10월호,132쪽)

 위 인용문의 요지는 '우리 안에 세 인격들의 하나님이 계시지만 이 셋은 구별은 되나 '분리된' 셋은 아니며 우리의 매일의 체험에서는 하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위트니스 리의 생각이 순식간에 바뀐 것이 아니다.

 

"위트니스 리는 아버지가 아들 안에 계시고 성령 안에 아들이 계시기 때문에 성령님이 우리 속에 계실 때 우리 속에는 세 인격으로서의 하나님(즉 아버지 하나님, 아들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 계신다고 했다. 부분적으로 맞는 말이다. 그러나 위트니스 리의 말처럼 '아들 하나님 안에 아버지 하나님께서만 계신 것'이 아니고, 아버지 하나님 안에도 아들 하나님도 성령 하나님도 계시고...."(최삼경, 교회와 신앙 97년 8월호, 158쪽)

 

요약하자면, '구별되나 분리되지 않으시는 성부, 성자, 성령이신 세 인격 모두가 우리 안에 계심을 믿는 사람은 어떤 경우로든 양태론자가 될 수 없다. 양태론을 바로 이해할 수 있는 신학적 역량이 있는 사람은 누구라도 이에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통합측 지적을 받고 돌이켜 볼 때, 비록 진리 상 문제가 없더라도 '수박 비유' 등 읽기에 따라 오해될 수 있는 '비유'나 '표현'은 가급적 사용하지 않는 것도 좋았겠다는 점은 인정되며 이에 대해서는 양해를 구한다.

 

나. 기독론에 대한 해명과 변증

 

통합측이 기독론에 대해 지적한 내용은 비교적 간단하다. 즉 위트니스 리가 '예수님의 인성에 변화가 있었다고 주장함'으로 그 결과 '예수님이 나실 때부터 승천하시기까지 참 하나님이시요. 참 인간이신그리스도의 양성 교리에서 어긋남'으로 문제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다음 두 가지 항목에 대한 해명으로 통합측의 오해가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1) "부활 전후에 예수님의 인성에 변화가 있었다"라고 말하는 위트니스 리의 주장은 성경에 근거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비록 설명은 복잡하게 했는지 모르지만 위트니스 리는 "예수님의 인성이 부활을 시점으로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않을 것으로 다시 사는'(고전15:42) '변화'를 거치셨다" 라는 말을 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적인 말을 한 것이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다고 본다.

 

 만일 통합측 지적이 정당한 것이 되려면 위트니스 리가 어떤 형태로든 '부활 후 예수님은 더 이상 참 사람이 아니다' 라는 식의 주장을 했어야 한다. 그러나 아래 인용문에서도 볼수 있듯이 위트니스 리는 '예수님은 부활 후에도 여전히 참 하나님, 참 사람이시다' 라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삼일 하나님의 체현이신 그리스도는 신성과 인성을 지니신 분이다. 신약은 예수께서 부활 후에도 여전히 사람이심을 분명히 계시한다. 마태복음 24장 30절에서 주 예수님은 그 분이 인자로서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하늘로부터 오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주 예수님은 다시 오실 때 여전히 사람이실 것이다. 오늘날 하늘에서 그리스도는 여전히 사람이시다. 찬송가(한국복음서원) 115장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보라 하늘 보좌 위에 인자 예수 앉았네 하나님이 높인 사람 영광의 관 쓰셨네'  사도행전 7장에서 스데반은 주 예수께서 인자로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다(55-56절). 인자로서 그 분은 신성과 인성을 모두 지니신 분이다. 하나님으로서 그 분은 전지전능하시다. 사람으로서 그 분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실 수 있다(히 4:15)"(위트니스 리, 세 부분인 사람의 생명 되시는 삼일 하나님, 한국복음서원, 1993년, 83-84쪽).

 

"승천 안에서 그리스도는 인자이시다. 이는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여전히 인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 즉 여전히 사람의 본성을 소유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주님은 십자가 이전에 땅 위에서 인자이셨으며, 부활과 승천 후 하나님의 우편 하늘에서도 여전히 인자이시다. 더 나아가 구름을 타고 오실 때도 그 분은 인자이실 것이다.…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성육신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되셨지만 부활 안에서 인성을 벗어버렸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위트니스 리, 신약의 결론- 그리스도 편, 1991년, 한국복음서원, 135-136쪽).

 

생각컨대, '부활시점을 전후로 예수님의 인성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하는 주제는 인간 이성으로는 다 이해할 수 없는 면이 있다. 추후 관심 있는 신학자들이 요한복음 7:39, 사도행전 13:33, 로마서 1:3-4, 고린도전서 15:45 등의 성경 본문에 대한 해석과 함께 이 주제에 대하여 좀더 심도 있는 검토가 있었으면 한다. 참고로 개혁교단 총회장을 여섯 차례나 역임했던 앤드류 머레이의 관점 일부를 소개드려 보고자 한다.

 

"그 아들이 하늘로 되돌아가셨을 땐 하나님의 독생자로서는 변함이 없으셨지만 이미 예전과 같은 존재는 아니셨다. 그는 인자로서 죽은 자들로부터 처음 나신 자였으며 스스로 완전케 하시고 깨끗케 하신 영광스런 인성(clothed with that glorified humanity which He had perfected and sanctified for Himself) 으로 옷 입으셨기 때문이다…그리고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기 안에 새로운 거룩한 인성을 완성하심으로 전에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것- 인간적이면서 동시에 신적인 생명을 이제 전해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우리를 대신하여 인간이자 그 우두머리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온전히 받으셨고 그의 인성을 하나님의 영의 처소이자 분배처로 삼으셨다. 그래서 성령은 신인(하나님, 사람)의 영-참으로 하나님의 영이면서 마찬가지로 인간의 영으로서 임하실 수 있었다. 그는 영광 받으신 예수님의 영으로 임하셔서 예수님을 믿는 각 사람 안에 계시면서 예수님의 인격적 생명과 현존의 영이심과 동시에 신자의 인격적 생명의 영이 되신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완전한 연합이 성취되고 최종적으로 완성된 것은 예수님의 보좌에 앉으시고 새로운 실존의 단계, 즉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은 영광에 들어가셨을 때이다"(앤드류 머레이, 임석남 번역, 그리스도의 영, 기독교문서선교회, 1993년, 41-44쪽, Andrew Murray, The Spirit of Christ, Whitaker House, 1984, pp 81-88).

 

앤드류 머레이는 위 글에서 예수님의 신성은 전혀 변함이 없으나 성육신 때 입으신 인성이 죽고 부활하여 영광 안에 들어가셨을 때 '영화롭게 되셨다는 것'과 믿는 이들이 영접한 부활한 예수님(생명주는 영, 고전15:45)은 신성과 인성을 모두 가지신 분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2) 위트니스리는 예수님이 참 하나님이자 참 사람이심을 굳게 믿는다.

 

이 항목은 칼케돈 신조와 유사한 다음과 같은 그의 신앙고백 하나로도 충분히 해명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 그분은 참 하나님이시요 참 사람이시다. 그분은 하나님이시자 사람이시다. 그분은 완전한 인성뿐 아니라 온전한 신성을 소유하고 계신다. 그분 안의 두 본성은 혼돈되거나 분리되지 않는다. 두 본성을 소유하고 계실지라도 여전히 그분은 한 인격이시다. 그분의 인격은 분리될 수 없고, 그 분의 본성도 혼돈되지 않는다. 이것이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 전체 안에서 보여진 합당한 계시이다. 이것은 또한 역대로 하나님의 교회의 정통적인 관점이다. 하나님이자 사람이시고, 두 본성을 가진 한 인격이시고, 분리됨이나 혼잡 됨이 없는 우리 주님은 참으로 비밀들 중의 비밀이시요, 영원히 우리의 경배와 찬양을 받기에 합당한 분이시다"(Witness Lee, The Person of Christ, LSM, 1981, p.12, 진리의 변호와 확증, 1996년, 한국복음서원, 96-97쪽).

 

결론적으로, 위 해명은 위트니스 리가 설사 "예수님의 인성에 변화가 있었다"라고 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성경의 내용을 말 한 것이고, 그는 예수님의 양성을 부인하지 않고 오히려 확고하게 믿는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확인시켜 주었다고 본다.

 

다. 인간론에 대한 해명과 변증

 

 과거에 예장통합 토론자와 토론할 때는 관련 연구 보고서에서 인간론에 관해 언급한 모든 항목들에 대해서 조목조목 반박한 바 있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는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본다. 단지 이단성 여부와 직결될 수 있는 한두 가지 핵심 요점에 대해 납득 할만한 해명을 드리면 족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먼저 비교적 가벼운 주제인 삼분설에 대한 지적에 대해 다루고, 이어서 통합측의 지적처럼 위트니스 리가 참으로 전인적인 타락을 부인하는지를 검토하고자 한다.

 

1) 삼분설, 이분설 문제

 

 통합측 지적대로 위트니스 리와 (지방)교회 성도들은 인간 삼분설을 지지한다. 그러나 이와 달리 장로 교단인 통합측은 이분설을 지지하는 것으로 안다. 그런데 역시 비중 있는 장로교인 중 하나였던 안토니 후크마는 "우리는 삼분론 뿐만 아니라 이분론도 거절해야만 한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라고 주장했다(개혁주의 인간론, 347쪽). 그는 '삼분론'뿐 아니라 '이분론'도 반대하는 '영-육 통일론자'이다(같은 책, 360쪽). 그렇다고 그가 장로 교인이 아니거나 정통교인이 아니라고 말할 사람은 없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이 주제가 정통과 이단을 분별하는 핵심 진리는 아니며 이견이 허용될 수 있는 상대적 진리임을 가리킨다고 본다. 그러므로 이 주제에 대한 이견은 쌍방이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는 선에서 서로 용납했으면 한다. 나름대로 각자가 그렇게 믿는 이유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2) 위트니스 리는 전인적인 타락을 부인하지 않는다.

 

 이에 대한 통합측의 비판 논리는 마치 계단을 오르듯 점진적이다. 즉 '위트니스 리가 사람의 육만 타락했다고 믿는다'는 가정(또는 전제) 하에, '위트니스 리는 영은 타락하지 않았다고  믿는다'라는 또 다른 가정을 이끌어 내고, 그것을 토대로 '그러므로 위트니스 리는 사람의 전인적인 타락을 부인 한다'라는 잠정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이에 대해 '위트니스 리는 결국 그리스도의 구속의 효력을 제한하는 주장을 하는 것이 되니 이단'이라는 논리이다. 실제로 통합측 연구 보고서는 "인간의 타락은 전인적인 것인데 비해 그것을 육체적인 것으로만 봄으로 몸만 타락하고 영은 타락하지 않은 것으로 되어 "범죄 하는 영은 죽을찌라"(겔18:20)는 성경 말씀과 다르다." 고 했다.

 

 그렇다면 '위트니스 리가 전인적인 타락을 부정했다'는 지적은 논리적 연결고리 중 어느 하나 예를 들어 그가 '영은 타락하지 않았다'라고 말한 적이 결코 없음을 입증하면 간단히 해명될 수 있는 사안이다. 그리고 이점은 이미 통합측 토론자와 공개 토론시 다음과 같이 통합측 토론자 본인 스스로의 자백에 가까운 언급으로 잘 해결되었다.

 

"물론 워치만 니나 위트니스 리가 인간의 영은 타락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영이 타락하여 죽었다고 주장한다"(최삼경, 교회와신앙, 97년 8월호, p164).

 

위 통합측 토론자의 짤막한 한 마디가 중첩되는 가정들 위에 기초해서 내렸던 '위트니스 리는 전인적인 타락을 부인하니 이단이다'라는 통합측 비판을 근거 없는 말이 되게 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인가? 여러 가지 가능성을 예측해 볼 수는 있다. 그러나 가장 기본적인 것은 사실이 사실대로 드러났을 뿐이라는 점이다. 아래에서 볼 수 있듯이 위트니스 리는 '육의 타락'은 물론 '영의 타락'을 포함한 전인적 타락을 믿는다. 그가 근본주의적 신앙을 가졌으니 그리스도의 완전한 구속 또한 당연히 믿는다.

 

"사람의 피조 된 영은 원래 하나님을 접촉하는 기관이었다. 사람은 그의 영을 통하여 그의 영으로 하나님과 교통하고 교제했다. 후에 사람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사람의 영은 죄의 오염으로 인해 손상되었다. 그리하여 사람의 영은 하나님을 향하여 그 기능을 상실하고 죽은 영이 되었다. 영이 죽었음으로 낡았다. 우리가 거듭날 때 주 예수의 피가 우리 영이 입었던 오염을 깨끗케 하므로, 그 때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의 요소인 하나님의 생명을 우리 안에 주입하고 우리의 영을 소생시킨다(골 2:13). 이렇게 해서 우리는 죽은 낡은 영이 새롭게 되고 살아있는 영이 되는 것이다"(위트니스 리, 생명의 인식, 1988년, 한국복음서원, 42쪽).

 

위 인용문은 위트니스 리가 사람의 영의 타락과 구속의 효력을 잘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 군데 더 인용해 보자.

 

"우리가 사람의 첫 번째 타락의 결과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 결과를 안다면 우리는 우리가 어디에 있으며 오늘날 우리가 누구인지를 이해할 것이다. a. 혼이 부패됨- 타락의 첫 번째 결과는 사람의 혼이 부패되고 오염되고 파괴된 것이다. 혼은 마귀의 생각과 말을 인정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에 오염되었다(창 3:7절). b. 몸이 천연적인 몸으로 변함- 그런 다음 몸은 지식나무의 요소, 곧 사탄의 요소를 가진 천연적인 몸으로 변하여 육체가 되었다.…그러므로 우리의 육체는 사탄의 죄로 완전히 점유되고 적셔졌기 때문에 우리는 결코 육체를 신뢰해서는 안 된다. c. 영이 죽음- 타락한 결과 사람의 영은 죽었으며 하나님으로부터 고립되었으며 하나님을 향하여 그 기능을 상실했다(8절, 10절). 사람의 세 부분-몸과 혼과 영-은 모두 타락의 영향을 받았다. 몸은 천연적인 몸으로 변했고 혼은 오염되었으며 영은 죽었다...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고 씻음 받았음을 인해 얼마나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할지! 또한 우리의 영이 살아났고 혼이 새로움과 변화의 과정 아래 있으며 몸이 영의 지시 아래 있게 될 것임을 인해 얼마나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할지!"(위트니스 리, 창세기 강해(보급판)(1), 1993년, 한국복음서원, 257-271쪽).

 

따라서, 위에서 보듯이 위트니스 리는 사람의 전인적인 타락도 믿고, 그리스도의 완전한 구속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앞으로 이 주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오해가 없으시기를 부탁드린다.

 

 여기서 한 가지 덧붙이자면, 통합측 보고서의 결론인 "위트니스 리 사상은...한국 교회의 많은 이단들을 낳게 하는 (김기동, 권신찬, 이명범 등) 모태가 되는 명백한 이단이다" 라는 말도  주로 위트니스 리의 인간론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 토론 과정에서 드러났다. 즉 통합측 토론자는 '사람의 혼만 인격이고 영은 인격이 아니다'라고 한다는 점에서 이명범, 김기동, 권신찬, 심지어 조용기씨도 위트니스 리와 같다고 했다. (최삼경, 교회와 신앙, 97년 8월호, 163-164쪽)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위트니스 리가 거론된 인물들에게 영향력을 끼친 증거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 역시 계속된 토론 과정에서 통합측 토론자가 아래와 같이 자신의 말을 또 부인함으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제일 먼저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인간의 혼이 인격이라면 영은 인격인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워치만 니나 위트니스 리가 영은 인격이 아니라고 단언하여 말한 곳을 찾아 볼 수는 없다. 단지 혼이 인격이라고 하고 있고 영은 인격이라고 말한 일이 없을 뿐이다"(최삼경, 교회와신앙, 97년 8월호, 161쪽).

 

 라. 교회론에 대한 해명과 변증

 

 교회론에 있어서 이단성을 가릴만한 핵심 요소는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통합 교단 헌법이 잘 선언하고 있듯이, '참되게 거듭난 사람은 에베소서 1장 23절, 4장 16절이 말하는 "시대와 지역과 종족과 인간의 계급을 초월한 그리스도의 몸이다"(통합측 헌법, 173쪽)라는 사실을 인정하는지 여부일 것이다. 원칙적으로 구원은 특정 단체에 속해 있다고 해서 받는 것이 아니다. 각자가 믿음으로 받는다. 또한 주님의 몸은 참되게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을 포함한다. 그런데 위트니스 리와 모든 (지방)교회 성도들은 아래 인용문에서 보듯이 어느 교단에 속해 있든지 참되게 구원받은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 인정하고 받는다.

 

"어느 교파 중에도 구원받은 성도들이 있으며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로서 우리들의 형제됨을 인정한다. 천주교나 개신교의 각 파 안에도 구원받은 성도들이 있다... 혹자는 묻기를 그러면 분열된 교회 안에는 구원받은 신도나 주님을 충심으로 사랑하는 경건한 성도들이 없느냐고 할 것이다. 물론 나는 있다고 인정한다."(위트니스 리, 성경에 나타난 교회, 한국복음서원, 1986, 103, 50쪽).

 위와 같은 위트니스 리의 교회관의 핵심은 지극히 성경적이고 정통이다 라고 말할 수 있다. 이와 달리 통합측이 교회론의 문제점이라고 지적한 아래 내용들을 우리는 이단성 여부를 가리는 교회론의 핵심 사항이라기보다는 상대적인 진리 내지는 실행상의 차이라고 이해한다. 그러나 마음을 연 성도의 교제의 차원에서 지적된 각 항목들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해 해명하고자 한다.  또한 이러한 해명을 통해 양측이 동일한 이해에 이르게 되길 간절히 희망하지만, 그렇게 되지 못할 부분도 물론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말미에 간략하게 언급할 소위 '지방교회' 개념이 그것이다. 다시 강조하건대 아래 내용들은 얼마든지 이견이 있을 수 있고 누가 정통이고 누구는 이단이 되는 사안은 아니라고 본다. 

 

1) 바벨론 음녀라고 한다는 지적

 

 위트니스 리는 계시록 주석 과정에서 '큰 바벨론'(계17:5)을 '로마 천주교'로 이해했다. 적지 않은 신실한 성경 교사들이 그와 동일한 해석을 하고 있다. 그러나 계시록 강해는 난해한 문제임으로 얼마든지 다른 해석적 관점이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고 본다. 즉 위트니스 리가 이런 주석을 통해 성경 본문을 해석은 하되 다른 기독교인들을 무시하거나 모욕하려는 의도는 없으며, 혹시 그런 면에 본의 아니게 오해가 있었다면 재차 양해를 구한다. 이제 이 주제를 객관적으로 보는데 혹시 도움이 될까하여 유사한 해석 몇 가지를 소개해 보겠다.

 

"바벨론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예표이다. 성경을 권위 있게 설명하는 많은 역사학자들과 신학자들도 그렇게 말한다. 많은 대형 교단들이 이 교회로부터 분리된 후, 어머니 교회의 전통과 실행들을 본받아 실행해 왔다. 이들 중 상당수가 세상의 맛과 은사들을 추구함에 있어서 어머니 교회의 실행을 따르고 있다."(Walter Lewis Wilson, Wilson's Dictionary of Bible Types. Grand Rapids: Eerdmans, [1979], c1957, p 241(entry on "Harlot"))

 

" 이 여인[계시록 17:5]은 음녀의 어미로 불린다. 어머니 음녀가 있고 딸 음녀들이 있다. 역사의 과정은 보다 적은 규모의 더 많은 제도를 낳은 어머니 우상 제도의 발전을 계시해 왔다. 종교 개혁 시기에, 개신교 주석가들은 늘 큰 음녀를 로마 천주교와 동일시 했다."(Donald Grey Barnhouse, Revelation: An Expository Commentary, Grand Rapids: Zondervan, [1982], c1971, p324).

 

" 내가 내 부담의 이유를 좀 말해 보겠다. 그것은 이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날 그분의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임들 가운데에서 거의 권위가 없으시다. 나는 로마 천주교나 자유주의자들이나 다양한 유사 크리스챤 이단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일반적으로는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을 의미하며, 복음주의자들이라는 이름아래 자신들이 우리 주님과 그분의 사도들의 영적인 후예들임을 소리 높여 외치는 사람들을 포함한다." (A. W. Tozer, "The Waning Authority of Christ in the Churches." Harrisburg:Christian Publications, Inc.,(n.d.), p.6).

 

"전통적으로, 개신교회는 로마 카톨릭 교회를 우상숭배적이고 변질된 적그리스도적 집단으로 간주해 왔다. 종교 개혁자 말틴 루터는 선언하기를, "교황은 귀신들이 충만한 자요 하나님의 원수요 적그리스도"라고 했고, 교황 제도를 마귀적이라고 했다(Church and Ministry III, p.363). 존 칼빈도 로마 교인들을 "그리스도의 치명적인 대적자들"로 여겼고, 로마 교황을 마귀 왕국의 지도자로, 그리고 교황의 복음을 복음의 "무서운 변질"로 간주했다(Institutes, IV. ii. 4. 12 : Commentary on the Galatians, p. 32)."(김효성, 현대교회 문제, 기독교 문서 선교회, 1993년, 108쪽).

 

위의 언급들 중에는 듣기에 따라 또는 각자 처한 입장에 따라 다소 거북한 대목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위트니스 리를 포함해서 위의 신학자들 중 누구도 참된 그리스도인들이나 주님의 교회 자체를 폄하하고 있지 않다. 대신에 그들 나름대로의 관점을 따라 객관적인 사실을 적으려고 한 것뿐이다. 그러나 서두에서도 언급했듯이 이에 대한 이견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2) 목사 제도와 예배를 부인한다는 지적

 

 이것은 루터도 주장한 바 있는 '계급적인 의미의 성직자-평신도 제도'를 반대한다는 말이 본의 아니게 와전된 것 같다. 하나님의 양무리에게는 당연히 목자들이 필요하다. (지방)교회측도 성도를 목양하는 전시간 사역자들이 있다. 또한 성경적인 예배를 부인하지 않는다.

 

3) 침례를 구원의 조건으로 삼는다는 지적

 

 구원은 전적으로 각자가 본인의 믿음을 따라 받는다. 그러나 영원한 멸망이 아닌 '이 패역한 세대'로부터 구원을 받으라고 권하고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이 침례를 받은 기록이 성경에 있다(행2:40-41). 이처럼 '세상으로부터의 분별' 내지는 믿음의 외적인 간증으로서의 침례를 말한 것에 다소 오해가 된 것 같다. 믿음에서 나오지 않은 침례는 아무 의미가 없다.

 

4) 주님의 이름 부름이 유일한 성령충만 방법이라고 한다는 지적

 

 한마디로 사실이 아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 부요함을 체험한다고 성경은 말한다(롬10:12). 그러나 지방교회 성도 누구도 이것을 유일한 성령 충만 방법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기회를 빌려 한 가지 추가하여 해명했으면 한다. 혹자는 '지방교회'가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를 따르는 사람들만을 가리키며, 그들만 교회이고, 그들에게만 구원이 있다는 주장 쯤으로 오해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소위 '지방 교회'란 '한 지역 교회는 그 특정 지역에 사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은 다 포함하되, 교회 앞에 그 지역명칭을 붙인다'는 정도의 말이다(행8:1, 13:1). 이러한 '지방 교회' 개념이 누구는 구원받고 누구는 받지 않고 같은 교회의 본질을 좌우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최대한으로 단순화하여 말한다면 '지방교회'는 '지역교회의 범위' 문제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것이 성경적인 지역 교회의 원칙이라고 믿고 또 다른 그리스도인들 모두도 이에 동의해 주길 바라지만, 얼마든지 각자가 소신을 따라 동의하지 않을 자유도 있다고 본다.

 

3. 결론

 

미국에서 위트니스 리 사역이 시작된 1960년대 중반부터 2000년도까지는 다른 그리스도인들과의 교제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일부에서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사역에 대해 크고 작은 오해들이 있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주님의 긍휼과 인도하심으로 (지방)교회 인도자들은 마음을 열고 미국 교계의 여러 단체들의 지도자들과 적극적으로 대화하고자 했다.

 

 그 결과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 책자만을 전적으로 출판하는 '리빙 스트림 미니스트리'(LSM)는 미국 복음주의 협의회(ECPA) 정 회원으로 가입되어 활동하게 되었다. 또한 1970년대 말부터 (지방) 교회에 대해 비판해 왔던 이단 변증단체인 CRI(Christian Research Institute: 행크 해나그라프)와 AIA(Answers In Action : 그레첸 패산티노)가 최근에 오해를 풀고 (지방)교회가 이단이 아니며 참된 신앙을 가진 주 안에 형제들임을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특히 풀러 신학교 총장과 신학 대학장이 (지방) 교회 인도자들과 2년 간 허심탄회한 대화와 검증 끝에, (지방) 교회를 "이단이 아니고 역사적 성경적인 그리스도인들" 로 바로 이해하게 된 것은 주님이 행하신 큰 화해의 역사라고 믿는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에 있는 (지방)교회들 인도자들도 한국 교계를 향하여 다소 경직되었던 과거의 자세를 버리고(회개하고), 주님이 허락하시면 더 적극적으로 주 안의 다른 지체들과 교제하기를 희망한다. 마침 올해가 평양 대 부흥 100주년에 해당되어 한국 교계에 회개와 화해의 흐름이 있는 것은 주님의 주권적인 안배라고 믿는다. 부디 이런 해명서 형식의 서면 교제를 통해 그 동안의 통합 교단측과의 쌓였던 오해와 갈등이 원만하게 해소될 수 있는 전환점을 갖게 되기를 주님께 간절히 기도드린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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