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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을 위한 싸움 공지사항입니다.
작성자
청지기
E-mail
dcpkorea@hanmail.net
등록일
2009/07/29 12:47
조회수
4,378
제목
강연/ 크리스챤 에큐메니칼 운동- 미국 풀러신학교를 중심으로




풀러는 폭넓은 에큐메니칼적 관점 대변



에큐메니칼 사역은 어려운 문제 다룸으로 사랑과 하나됨 자라가

모든 국가와 모든 문명의 중심에 주님이신 그리스도가 계심 강조




한국지방교회는 지난달 28일 저녁 롯데호텔에서 미국 풀러신학교 신학부 학장 하워드 로웬박사와 조직신학 교수 벨리 마티박사 그리고 미국 크리스챤 리서치 인스터튜트 대표 행크 해너그래프 씨를 초청해 리셉션을 가졌다. 이날 리셉션은 같은 날 오후 목회자신문이 주최한 “국내외 교회연합과 이단들의 활동”이란 주제의 목회자를 위한 신학 심포지엄에 참가차 내한한 이들 일행을 지방교회측이 초청해 이루어진 것이다. 풀러신학교는 4년전 지방교회에 대한 신학면 교리면 실천면을 조사 연구한 결과 이단성이 없음을 확인하는 성명서를 발표한 일이 있었다. 다음은 이날 리셉션에서 하워드 로웬박사가 행한 “크리스챤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한 발표문을 정리한 것이다. - 편집자주


이 시대의 크리스챤 에큐메니칼 운동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가진 하나를 다시 한번 강조하고 그러한 연합의 더 큰 증거를 세상에 알리려는 깊은 영적, 신학적, 실제적 필요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저 자신도 개혁신학의 전통들 중 하나인 재침례파 메노나이트 배경에 신앙의 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30여년 이상, 저는 제가 살고 있는 북 미주 내에서의 지역적인 수준뿐 아니라 국가적 그리고 국제적 수준에서 메노나이트 전통과 각기 다른 개신교적 전통 그리고 가톨릭 전통과 함께하는 에큐메니칼 사역에 보다 심도있게 관여해 왔습니다.

에큐메니칼의 형성
가톨릭과 메노나이트의 대표자들 사이에 있었던 가톨릭-메노나이트 국제회담에 관여하는 특권을 가진 것이 그것입니다. 우리는 5년 동안 역사적으로 두 전통들을 분리시켰던 신학적 주요 문제들의 많은 부분들을 다루었습니다. 여러분은 가톨릭과 메노나이트들은 지난 500년 동안 거의 서로 대화가 없었다는 점을 아셔야 합니다. 지난 16세기에 걸쳐 가톨릭 그리스챤들은 수 천명의 재침례파 메노나이트들을 죽였었기 때문에, 그런 골이 깊은 차이점들에 대해 토론을 시작했다는 것은 참으로 감동적인 경험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토론은 ‘그러한 기억들에 대한 치유’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우리의 대화 속에서 우리는 다만 솔직하게 대화할 뿐만 아니라, 함께 예배드리고, 함께 기도하고, 심지어 함께 울었습니다.

제가 이런 개인적인 체험을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우리가 서로 다른 전통을 가진 그리스도인들과 대화할 때 우리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점을 예로 드리려는 것입니다. 저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경험했을 뿐 아니라, 또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가지고 있는 공통된 기반을 점점 더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에큐메니칼 사역의 유익은 어려운 문제들을 함께 다룸으로 사랑과 하나됨이 자라간다는 것입니다. 신학적인 차이점들을 토론하는 유익은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신앙의 정체성이 분명하게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제 경험으로 볼 때, 에큐메니칼적인 대화는 크리스챤 신앙을 가진 사람들로서 우리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을 더 많이 이해하게 할 뿐 아니라, 그것은 또한 우리의 고유한 확신들을 명확히 하도록 돕습니다.

저는 에큐메니칼 형성이 중요한 컨퍼런스들에서 공식 직함을 가진 종교인들 간의 대화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제 개인적인 경험들을 말씀 드렸습니다. 그것은 주로 세상에 화해의 복음을 증거하기 위하여 함께 토론하고, 함께 교류하고, 함께 일하는 지방과 지역적 교회차원의 전 세계에 걸친 그리스도인들을 포함합니다.

저는 약 7년전에 풀러신학교로 돌아왔습니다. 30년 전에 저는 그 학교 학생이었습니다. 제가 풀러로 돌아온 이유들 중에 하나, 즉 이런 분위기를 다시 좋아하게 된 것은 풀러가 가지는 에큐메니칼 이상 때문입니다. 수년전에 풀러에서 ‘글로벌 크리스챤 포럼’이라는 컨퍼런스가 열렸습니다. 이 포럼에서 전 세계로부터 풀러신학교에 모여 든 80여명은 크리스챤 교회들이 서로 에큐메니칼적으로 연관을 맺을 수 있는 새로운 방안들에 대해 토론했습니다. 그들은 풀러 커뮤니티가 많은 크리스챤 교파들을 포함한 보다 폭넓은 에큐메니칼 실체를 대표한다는 점에서 저희 캠퍼스에서 모이길 원했습니다. 이 컨퍼런스에는 정교회 전통, 가톨릭 전통, 개신교 전통들(주류, 복음주의, 오순절, 카리스마파), 그리고 아프리카 독립교회 지도자들이 참석했습니다.

새로운 단계의 연합에 도달하려면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들의 차이점들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로서 가지는 공통점을 서로 나누는 것에 우선적으로 강조점을 두어야만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연합은 이미 확립된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따라서 저는 에큐메니칼 사역은 무엇보다도 그리스도 안에서의 변화와 화해의 복음을 증진하도록 함께 일하려는 개별적 크리스챤 포메이션이며, 각기 다른 전통을 배경으로 가진 그리스도인들에게 접근하는 것이라는 점을 여러분에게 도전으로 남겨두고자 합니다.

오이쿠메네(에큐메니칼)은 신약에 나오는 단어입니다. 처음에 이 단어는 로마 제국의 방대한 땅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초기 크리스챤 커뮤니티가 성장하면서 이 단어는 온 교회를 가리키는 용어가 되었습니다. 그후에는 세상의 전체 교회의 믿음을 뜻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교회는 흥망성쇠의 모든 역사에 걸쳐 에큐메니칼 사역을 해 오고 있습니다. 제가 앞에서 지적했듯이, 개혁 이래로 수많은 분파들이 글로벌 크리스챤 교회에 대해 정의해 왔습니다. 특히 지난 세기 동안 이렇듯 점점 증가하고 있는 분파에 대한 관심이 커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관심에 대한 반응이 ‘에큐메니칼 운동’이라고 불리는 것에 모아지게 된 것입니다.

1920년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서 아주 중요한 컨퍼런스가 열렸습니다. 이 컨퍼런스는 에큐메니칼 운동의 상징적인 시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양한 교회 전통을 가진 대표자들이 여러가지 문제들에 대해 그리스도인으로서 함께 논의하기 위해 만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이 컨퍼런스에서 강조된 것이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생명과 사역위원회’인데, 그리스도인으로서 실제적 방면을 함께 다루기 위해 만들어 졌습니다. 둘째는 ‘믿음과 질서위원회’이며 신학적인 문제를 다루기 위한 것입니다. 셋째는 ‘국제 선교 위원회’입니다.

약 30년 후인 1938년에 그 중 두 그룹이 통합되었습니다. 믿음과 질서위원회가 신학적인 문제를 다루었고, 생명과 사역위원회가 좀 더 실제적인 사역과 봉사의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신학이 행동과 복음이 봉사와 함께 결합된 것은 에큐메니칼 운동의 발전에 주요한 신학적 통찰력의 출현을 말해줍니다. 세계교회협의회(WCC)가 태동된 것은 이러한 초창기 집회들 후였습니다. 그 후 WCC는 전 세계에 있는 약 5억 명의 그리스도인들을 대표하는 기관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지난 세계 동안에 WCC는 매 7~8년마다 전 세게 여러 다른 곳에서 주요 에큐메니칼 컨퍼런스를 가져왔습니다. 전 세계의 거의 모든 국가에 전국교회협의회 뿐 아니라, 지역이나 지방교회협의회가 설립되었습니다. 전 세계에 걸친 WCC의 발전은 지난 세기 동안에 교회와 크리스챤의 에큐메니칼 포메이션에 의미심장한 영향을 끼쳐왔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만한 또 한 가지는 지난 세기 동안 오순절파와 카리스마 운동을 통해 크리스챤 교회가 유례없는 성장을 이룬 것입니다. 이러한 교회 운동은 WCC와는 매우 다른 방식으로 크리스쳔과 교회의 에큐메니컬적 확장과 형성에 큰 공헌을 해왔습니다.

신학적 모델
지난 수 백년동안 세계는 정치적, 경제적, 문학적으로 괄목할 만한 전환이 있어왔습니다. 이렇게 변화되는 상황 가운데에서 에큐메니칼 운동은 적어도 세 가지 다른 모델로 발전되어 왔습니다. 초창기에 나타난 첫 번째 모델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의 기간을 대변하는 ‘배타적 모델’로 간주됩니다. 그 기간동안 우리에겐 세계적인 크리스챤 문명을 개발 중이라는 감각이 있었습니다. 소위 크리스챤화된 서구문명입니다. 1910년 세계는 그때까지 다다르지 못했던 총합에 거의 근접했습니다. 그 당시는 유럽과 그 식민세력이 세계 인구의 80% 이상을 통제하고 지배했습니다. 그 세력들이 지구상의 땅 50% 가량을 지배했고 세계 경제권의 약 70%를 좌우했습니다. 거기엔 세계와 교회 안에서 하나의 인류를 위한 강한 비전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엔 전 세계적으로 아마도 하나의 크리스챤 문명을 세울 수 있다는 강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이제 종종 에큐메니즘의 ‘포괄적 모델’로 간주되어 온 두 번째 모델로 넘어 가겠습니다. 이 모델은 대대적인 지구상의 변화가운데서 나타났고 우세했습니다. 이십세기 초 부터 거의 이십세기 전체에 걸친 거대한 이벤트들이 현대 기독교 문화의 비젼을 무너뜨리는데 앞장섰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세계 일차 대전을 이 전쟁의 양편 모두에 있는 로마 가톨릭과 청교도 간의 내전이라 말합니다. 또 다른 영향력은 러시아 혁명, 서구 분리주의, 1930년대의 대공황, 유럽내의 파시즘, 식민주의의 붕괴, 보다 갑작스런 전 복음운동의 종식과 그 기간동안 복음이 중국에 진출한 것입니다.

제가 이런 것들을 언급하는 것은 이런 상황에서 그리스도 중심의 보편주의를 주창하는 세계교회협의회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다양성과 분파가 증가되는 와중에서도 모든 국가와 모든 문명의 중심에 주님이신 그리스도가 계심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계적인 추세 속에서 1947년에 풀러 신학교가 설립된 것은 매우 의미가 있습니다. 이 기간 중에 풀러가 설립되고 발전된 것은 20세기의 격동과 변화 속에서 각자의 동질성과 사명을 유지하려는 노력으로 국가적 또는 세계적인 교회 내부의 나뉘어진 몸들 간의 관계구축과 강화를 위한 필요성의 대두와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 30여년 전에 에큐메니즘의 ‘다원론자 모델’로도 알려진 세번째 모델이 니타났습니다. 세계는 백년전 ‘기독교화’된 서구에 의해 구상되어 왔던 국가 간의 전적인 통합쪽으로 발전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세계적으로, 또한 특별히 전통적인 기독교계 내에서 종교적이고 문화적인 다원화와 알력을 목격해왔습니다. 그런 문화적 다원화는 지난 반 세기에 걸쳐 세계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감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증가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지구 환경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심해져서, 우리는 생태학적인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저런 발전들이 우리가 사는 이 세계에는 적지 않은 다원화가 있음을 이해하게 해 주었습니다. 지난 수백 년간의 에큐메니칼 운동은 우리를 긴 여정으로 이끌었고, 우리에게 수많은 도전을 남겨 놓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 운동과 헌신된 그리스도인으로서 함께 대화하고 화목의 복음의 증거를 짊어져 온 세계 각 곳의 지도자들의 노력에 의해 많은 열매를 맺어왔습니다.

그러나 현존하는 도전에 반응함에 있어서 우리는 에큐메니칼 사역이 값싸게 오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들 간의 차이점을 가볍게 간과해서도 안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그리스도의 화해의 임무와 사역을 위해 이런 차이점들을 해결하도록 장기적으로 열심히 수고할 갈망이 있어야 합니다. 풀러신학교는 이러한 몇가지 새롭고 괄목할 만한 발전의 가장 중심에 있어 왔습니다. 풀러와 만났거나 대화 중인 그룹들 다수가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관계를 갖기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만남을 우리 캠퍼스에서 갖거나 국제적인 대화에 우리가 포함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풀러는 폭넓은 에큐메니칼적인 관점을 대변하기 때문입니다.

- 발췌 http://www.iepn.co.kr  -

교회연합신문725호080309.pdf (1.52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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