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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을 위한 싸움 공지사항입니다.
작성자
청지기
E-mail
ccws@hanmail.net
등록일
2008/03/15 10:41
조회수
6,941
제목
메노나이트




◇ 지난 주 한국교회에는 유력한 메노나이트파 신학자 한 분이 내한했다. 지금 미국의 풀러신학교 신학부에서 학장을 맡고 있는 하워드 J 로웬박사이다. 그는 풀러신학교의 4천여명의 학생 중 약 4분의1이 한국 학생이라고 했다. 이는 풀러신학교가 한국교회에 그만큼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풀러신학교는 미국의 개신교 근본주의로 특징지어지는 분리주의와 반지성주의가 한창 성행하던 1947년에 에큐메니칼 복음주의적 소명을 갖고 설립되었다. 현재는 50개 국가에서 100개도 훨씬 넘는 교단 출신 학생들이 이곳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이 신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신학부 학장이 메노나이트이다.

◇ 중세 종교개혁 당시 화란의 개혁자 메노 시몬스(Meno Simons, 1490~1561)는 재세례파 운동의 면모를 일신시킨 인물이다. 스위스 취리히에서 시작된 재세례파 운동은 쯔빙글리를 중심한 ‘개혁파’운동이 반쪽 개혁이라고 주장하며 유아세례를 부정하고 철저한 자유교회로의 개혁을 주창하며 콘라드 그레벨과 펠릭스 만쯔, 게오르게 블라우로크, 발타자르 휘프마이어 등에 의해 전개되었던 급진적 교회개혁 운동이다. 그러나 이 재세례파 운동은 개혁파와 가톨릭 양쪽에 의해 무참히 박해를 받았다. 재세례파 지도자들은 모두 익사 당하거나, 화형 당했다. 그 추종자들 중 일부가 북부 독일의 뭔스터를 점령하고 재세례파 왕국을 세웠다가 패배하고 흩어질 무렵, 가톨릭 사제였다가 루터파로 넘어왔던 메노 시몬스가 이들의 지도자가 되었다.

◇ 메노 시몬스는 재세례파의 과격한 교리를 보다 온건하고 평화적인 내용으로 수정하고 성령의 인도에 따라 평화와 봉사의 생활을 하는 중생한 인물들로 교회를 조직하였다. 그는 이런 교회가 곧 성경적 사도적 교회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동생이 포함된 300여명의 재세례파 교도들이 1535년 4월 볼스바르트에서 가톨릭군에 패하여 무참히 학살 당한 사건을 목격하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재세례파 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메노는 많은 지지자를 얻었다. 그러나 초기의 메노의 지지자들은 가톨릭에 의해 수많은 순교자를 배출했다. 이후 그의 신앙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을 ‘메노나이트’(Mennonities)라고 부른다. 메노나이트는 화란과 북부 독일, 러시아로 퍼졌다. 그리고 신세계의 발견과 함께 북미주로 퍼져 나갔다. 그러나 한국 진출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 이런 역사적 신앙 경험을 가진 하워드 로웬은 지난 30여년간 북미에서 가톨릭 교회와 메노나이트 간의 대화를 이끌어 온 인물이다. 그런데 그가 한국에서는 이단시 되고 있는 워치만니의 ‘지방교회’(Local Church)를 공개적으로 “이단 아니다”라고 했다. 풀러신학교가 4년전 지방교회와 대화하고 교수들로 구성된 연구진이 연구해 본 결과 신학적인 면, 교리적인 면, 신앙실천적인 면에서 이단성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풀러 출신이 많은 한국교회에 어떤 영향이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 발췌 http://www.iepn.co.kr  -

교회연합신문725호080309.pdf(1.53 MByte) 교회연합신문725호080309.pdf(1.53 MBy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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