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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을 위한 싸움 공지사항입니다.
작성자
청지기
E-mail
dcpkorea@hanmail.net
등록일
2012/12/12 15:38
조회수
8,036
제목
지방교회 관련 왜곡사실에 대한 반박 및 해명

세이연의 세칭 ‘류광수 다락방’ 관련 연구보고서 중
지방교회 관련 왜곡사실에 대한 반박 및 해명

서론
1. 세이연 이름으로 발표되었으나, 실상은 감리교인 이인규 권사의 평소 주장일 뿐이다.
2. 사실 왜곡 및 판단기준 자체에 이단성이 엿보인다.

본론
1. 이인규 권사(세이연) 는 성부만 하나님이시고, 성자와 성령은 하나님도 아니라고 오해한다.
2. 삼위 하나님께서 구별만 아니라 심지어 세 사람들처럼 각각 분리도 되신다고 오해한다.
3. 기독론 관련 비판은 근거없는 터무니 없는 비방일 뿐이다.
4. 연구 보고서가 논리의 비약이 심하고, 전문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결론
1. 세이연의 ‘새로운 이단성 발견’ 주장은 거짓이다.
2. 이단감별사 자체에 대한 정밀 검증이 필요하다.
3. 상대방에게 변론기회를 봉쇄한 일방적인 이단정죄 관행은 진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1. 서론

먼저 이 글은 세칭 ‘류광수 다락방’(예장 전도통회) 측을 변호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그러나 두 가지 매우 긴급하고 중요한 목적을 가지고 작성되었습니다. 첫째 류광수 다락방 측의 “새로운 이단성을 밝혔다”는 세이연 측의 주장 중에서 최소한 지방교회 관련 부분은 거짓이며, 문제가 많음으로 결코 ‘새로운 증거’로 보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둘째, 이 글은 비록 87명의 회원을 두었다는 세이연의 이름으로 발표되었지만, 정밀 검토한 결과 감리교인 이인규 권사가 인터넷 상에서 평소 주장했던 것들을 짜집기 한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더구나 그 내용에는 1) 연구대상인 ‘사실 이해’에 현저한 왜곡이 있고, 2) 그의 이단 판단기준 자체에 오히려 이단성이 엿보이고 있습니다. 따라서 당사자의 반론의 기회를 차단한 상태에서 문제점이 적지 않은 세이연 자료에만 의존하여 내린 결론은 의미가 없음으로 반드시 적절한 보완이 필요합니다.

2. 본론

지방 교회측은 본 세이연 연구보고서가 다룬 내용을 대상으로 이미 여러 차례 이인규 권사와 토론한 바 있어서 이런 내용들이 매우 익숙합니다. 이인규 권사의 주장이 대거 반영된 본 세이연 연구보고서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치명적인 하자가 있습니다.

첫째, 이인규 권사(또는 세이연)는 삼위 하나님 중 오직 성부만 ‘하나님’이시고, 성자나 성령은 하나님도 아니시다 라고 오해합니다.

따라서 누가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으셨다>라고 말하면, 전후 문맥이 ‘성자’ 하나님이 육신을 입었다는 말임이 분명함에도, 성부가 성자가 되었다는 말이라는 식으로 억지를 부립니다. 그래야 자신이 세워 놓은 양태론 공식(하나님=예수님=성령)에 딱 맞아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인규 권사의 평소의 습관과 그릇된 판단 기준이 본 보고서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과 정통 신조는 성부만 아니라 ‘성자도 하나님이시며, 성령도 하나님이시다’ 라고 선언합니다. 이와 달리 ‘성부만 참 하나님 이시고 성자나 성령은 하나님도 아니다’ 라는 이인규 권사 (또는 세이연)의 관점은 이단으로 밝혀진 아리우스와 여호와의 증인들 주장과 같습니다.

둘째, 이인규 권사( 또는 세이연)는 삼위 하나님이 구별되실 뿐 아니라 심지어 ‘집 안에 걸어 들어오는 세 사람들’처럼 각각 분리된 세 개체들로 오해합니다.

또한 삼위의 상호내주를 가리키는 ‘페리코레시스’(요14:10-11) [1]개념도 서울과 부산처럼 각각 멀리 분리되어 떨어져 있는 두 사람이 마음만 서로 안에 있는 식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지상 사역시의 성자 안에는 성부가 안 계셨다’ 라는 최 모 목사의 주장과 함께 삼위를 ‘분리된 세 개체들’ 로 보는 삼신론 사상일 뿐입니다.

셋째, 정통 기독론은 주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의 ‘혼합’을 경계했을 뿐 ‘구별’을 금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이인규 권사(또는 세이연)는 양성을 구별한 자체를 이단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인성 부인이라는 있지도 않은 말을 지어냅니다. 이처럼 무리한 이단정죄는 하나님 앞에 득죄하는 것이며(롬14:10), 교회 성장을 현저하게 위축시키는 주된 요인입니다.

넷째, 이인규 권사(또는 세이연)는 논리적인 연관성도 없는 자료들을 열거해 놓고 공연히 문제가 많다는 식의 경솔하고 비전문적인 주장을 일삼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들은 엄중한 사안을 다루는 이단 연구보고서로서의 신뢰감을 현저하게 떨어뜨릴 뿐입니다.

이제 위 네 가지 문제점들을 구체적인 증거를 인용해 가면서 하나씩 다뤄보겠습니다.

1) ‘성부만 하나님’으로 보는 사상의 오류

이인규 권사(세이연)가 연구보고서에서 문제가 있다며 지적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인규 주장)결국 위의 류광수 씨의 가르침을 요약해 보면 하나님 자신이 직접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이 예수요, 그 분이 다시 성령으로 변하여 오셨다는 양태론적 삼위일체요, ‘하나님=예수의 영’이라는 잘못된 기독론을 말하는 것이다.…지방교회의 창시자 윗트니스 리의 글을 보면 류광수 씨가 주장하는 내용과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육신 되신 후에 하나님은 성육신되기 이전과는 달라지셨다. 성육신 이전에 그 분은 다만 하나님이셨지만 그러나 성육신되신 후에 그 분은 사람의 껍질 안에 계신 하나님이셨다”(윗트니스 리, <세부분의 사람의 생명되시는 삼일하나님>, 54쪽). “

쟁점 1- 위 위트니스 리의 인용문에서 언급된 ‘하나님’이 과연 이인규 권사의 오해처럼 ‘성부 하나님’을 의미한 것이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때가 찼을 때 삼일 하나님은 신성한 삼일성의 두 번째 위격이신 하나님의 아들을 사람의 몸을 취한(히 10:5) 성육신으로 보내셨다.”(위트니스 리, 신약의 결론-그리스도, 1991, 193 쪽)

위트니스 리는 위 인용문에서 성육신의 주체가 성부가 아니라 ‘삼일성의 두 번째 위격’ 즉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2] 따라서 ‘성부가 성자가 되었다’는 말이니 양태론이라는 이인규님의 주장은 억지요 거짓임이 이로써 선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즉 그의 도식적인 양태론 공식이 첫 단추부터 어긋나버린 것입니다.

쟁점 2- 과연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이 아니신가 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인규 권사(세이연)와 이단인 여호와의 증인들을 제외하고, 성자 또한 참 하나님이심을 부인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성경과 정통 가르침이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하나님이시니라”(요1:1). “말씀이 육신이 되어”(요1:14).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저는…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롬9:5).

“이와 같이, 성부도 하나님이고, 성자도 하나님이고, 성령도 하나님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셋이 아니라 하나만 존재한다.”(아타나시우스 신조)

87명의 전문가들이 모였다는 세이연 측이 ‘성부만 하나님이고 성자는 하나님도 아니다’ 라는 이인규 님의 이단적 시각을 걸러내지 못하고, 세이연의 이름이 사용되도록 허락한 것은 큰 실수였습니다. 이것은 결코 “새로운 이단성의 증거”가 되지 못하며, 오히려 한 개인의 이단성을 세이연 자체의 것으로 공개적으로 떠 않았을 뿐입니다.

2) ‘삼위 하나님을 분리된 세 하나님들’로 보는 사상의 오류

정통 삼위일체는 삼위의 각 위격은 다른 두 위격들이 구별된 상태로 상호내재 (상호 침투)하심으로, 1/3하나님이 아니라 삼위가 다 포함된 ‘온전한 하나님’ (Complete God) 이시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통 삼위일체론 논구의 최종 주자”로 평가 받는[3] 어거스틴도 “(삼위의) 하나가 셋을 합한 것 만하며, 둘을 합해도 하나보다 더하지 않다.”라고 말한 것입니다.[4] 정통 개혁 신학자인 로레인 뵈트너(Loraine Boettner)도 같은 맥락에서 마태복음 6장 9절에 나오는 주기도문에서의 아버지는 ‘배타적으로 제 1격만이 아니라 세 위격들이 다 포함된 삼일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주기도문의 예에서 처럼, 우리의 기도 안에서 ‘아버지’라는 단어가 사용될 때, 그것은 배타적으로 삼일성의 첫번 째 위격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한 하나님인 세 위격들을 가리킨다. 삼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이시다.”(로레인 뵈트너)[5]

이와 달리 이인규 권사(세이연)는 삼위 중 어느 한 위격은 다른 두 위격이 배제된 1/3하나님이라고 오해합니다. 이러한 ‘분리된 세 하나님들’ 이단사상을 가진 이인규 권사는 다음에서 보듯이 지극히 성경적인 내용을 문제 삼고 있습니다.

이인규 권사(세이연) 주장 1
“우리 모두가 그분이 다만 영원 안에 감추인 아버지이고, 인간사회에 나타난 아들이실 뿐 아니라, 우리 안에 들어오신 그 영이심을 보아야 한다”(윗트니스 리, <하나님의 경륜 안에 있는 두 가지 비밀>, 21쪽).
“결국 류광수 씨의 다락방이나 지방교회는 하나님이 곧 도성인신하신 예수요, 바로 이 예수가 보혜사로 오신 성령으로 “하나님 = 예수님 = 성령님”이라는 등식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이것은 분명히 양태론적 단일신론으로서 사벨리우스가 주장했던 이단적인 사상이다.”

지방교회측 반박: 위 인용문에서 위트니스 리는 ‘세 위격을 가지신 한 분 하나님’(One God)(신6:4, 롬3:30) 은 ‘감추인 아버지’이자, ‘나타난 아들’이시자, 또한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그영’이시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성부가 성자가 되고(그러므로 성부는 사라지고) 성자가 성령이 되었다 (그러므로 성자는 사라지고)’는 사벨리우스식 주장과는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 이에 대한 강력한 증거는 다음에서 보듯이 위트니스 리가 구별된 세 위격의 ‘영원성’을 믿고 고백한 점입니다.

우리는 성경에 따라 아버지가 영원하시고, 아들이 영원하시며, 영이 영원하심을 믿는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선포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성경이 그렇게 말하기 때문에 이것을 믿으며 선포한다.” (위트니스 리, 신약의 결론-하나님, 303쪽)

위와 같이 삼위가 각기 영원하심을 믿는 사람을, ‘사벨리우스의 주장과 같다’ 라고 정죄하는 것은 신학을 조금만 알아도 할수 없는 무리한 단정입니다. 이처럼 객관적인 사실을 회피한 채, 미리 세워놓은 이단 공식에 억지로 꿰어 맞추는 식의 이단 감별은 자제되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이런 부끄러운 모습이 전문가 집단을 자처하는 세이연에서 재현된 것은 매우 실망스러운 일입니다.

이인규 권사(세이연)의 주장 2
지방교회는 “부활의 실제를 영으로 사는 것”을 주장한다. 다락방이 지방교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지방교회는 성령이라고 말하지 않고 ‘살려주는 영’ 혹은 ‘그 영’이라고 말하며, ‘완결된 영’이라고 주장한다. “예수가 죽고 부활하여 그 영이 되었다는 것을 부활”이라고 하는 것도 동일하다. 이러한 양태론적인 개념을 류광수 씨도 부활이라고 여러 번 언급한다. 윗트니스 리의 글을 우선 살펴보자.

“그와 같이 완결된 영으로 살아날 때, 이것이 바로 완결된 영의 부활 안에 사는 것이다. 이 부활은 어떤 능력이나 사물이 아니라 한 분의 인격이다. 이것이 ‘예수님 그분은 부활’이라고 말씀하신 이유이다. 더욱이 부활의 실제는 삼일 하나님의 최종완결인 그 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결론 - 삼일 하나님, 그리스도, 그 영, 부활은 하나임 - 을 갖는다. 우리가 앞의 이 항목을 따라 살 때에 우리는 부활 안에 있다. 이 부활은 한 인격 - 하나님 - 을 가리키는 것이다”(윗트니스 리, <하나님의 경륜과 하나님>, 사람의 합당한 삶, 62쪽).

지방교회측 반박: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이 (죽고 부활하신 후) ‘생명주는 영’이 되셨다 는 것은 성경 본문 자체입니다(고전 15:45). 이인규 권사는 자신의 그릇된 신관으로 인해 이런 성경본문을 2격이 부활 후 3격이 되었다는 말로 오해할 뿐입니다. ‘삼위가 상호 내재 하심으로 한 위격은 온전한 하나님이시다’ 라는 정통 삼위일체를 믿는다면, ‘2격이 어떤 일로 3격이 되시고, 그후 더 이상 2격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발상 자체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또한 ‘부활이 인격이다’ 라는 말은 ‘내가 부활이요’(요11:25) 라는 말씀에 근거한 것입니다. 성경은 부활하신 주님이 현재 한면으로 하늘 보좌에 계시고(롬8:34), 다른 한면으로 우리 안에 내주하신다고 말씀합니다(골1:27, 갈2:20). 그렇다면 이 ‘부활의 실재’는 오늘날 어디에 있을까요? 당연히 부활하신 분 즉 생명주는 영 안에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지극히 상식적이고 성경적인 언급을 문제 삼는 것은 억지를 부리기 위함이거나, 삼위를 분리된 세 하나님들로 보는 자신의 이단 사상 때문일 것입니다.

이인규 권사 (세이연)의 주장 3
“지방교회에서는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이 사람 속으로 들어가 ‘하나님 자신을 공급하고 분배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그것을 ‘하나님의 경륜’이라고 한다. 지방교회의 사상은 다락방 류광수가 말하는 사상과 다르지 않고 동일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지방교회 측 반박: 이 역시 삼위를 각각 분리된 세 개체들로 보는 삼신론 이단 사상의 후유증일 뿐입니다. 주님을 영접하면 당연히 성부와 성령이 포함되신 온전한 하나님을 영접하지 주님따로 성령따로 성부따로 영접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골1:27, 롬8:10), ‘성령’(롬8:9, 요14:17), ‘성부’ (요일 4:12,엡4:6하, 요14:23)가 믿는 이들 안에 내주하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누구도 이 삼위를 각각 세 번 영접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삼위는 구별되나 분리되지 않으심으로,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인규 님처럼 삼신론적 으로 생각하다 보면, 성령만 또는 주님만 자기 안에 내주하신다고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 자신을 공급한다’는 말은 요한복음 10:10이 말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도록’ 오셨다는 말씀에 근거합니다. 성경은 주님자신이 생명이시라고 말합니다(요11:25).

이인규 권사(세이연)의 주장 4
예수님의 성육신과 하나님의 자녀에게 임하신 성령의 내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성육신은 삼위일체 중에 성자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속하기 위하여 참 하나님으로써 참 사람이 되신 사건이다. 그러나 그분이 비록 사람이기는 하셨지만 성자 하나님의 인격으로 오셨기 때문에 두 분이 아니라 한 분 그리스도시요 주로써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써 우리의 경배의 대상이 되신 것이다. 성도들에게 임한 성령의 내주는 예수님의 성육신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의미로서….”

지방교회측의 반박: 이 역시 각 위격을 각각 분리된 1/3 하나님으로 본 결과일 뿐입니다. 성육신은 제 2격이 육신을 입으셨지만, 그 2격은 다른 두 위격과 분리된 분이 아닙니다.[6] 따라서 성경은 1/3하나님이 아니라 ‘신격의 모든 충만’이 육체를 입으셨다고 말합니다(골2:9). 마찬가지로 우리가 거듭날 때 성령 또는 예수님을 영접했더라도 1/3 하나님이 아니라 삼위가 다 포함된 온전한 하나님을 영접한 것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우리가 한 위격을 영접해도 위에서 보듯이 삼위 모두가 우리 안에 내주하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현재 우리 안에 성령만 계시고, 성부와 성자는 안 계신다는 일부의 주장은 비진리입니다.[7]

3) 기독론 관련 비판은 근거없는 터무니 없는 비방임

정통 기독론은 주 예수님이 참 하나님이시고 참 사람이시라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인성은 죄만 없으실 뿐 우리의 인성과 정확히 같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8] 위트니스 리는 다음과 같이 지극히 성경적인 기독론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양성 분리’ 혹은 ‘인성 부인’ 운운 은 터무니 없는 억지 비방일 뿐입니다.

“…그리하여 그분은 죄 없으신 하나님-사람, 곧 완전한 하나님이시자 온전한 사람으로서 두 본성, 곧 신성한 본성과 사람의 본성을 소유하셨다. 그분의 두 본성이 연합되어 하나님-사람을 산출했지만, 그 두 본성의 개별적인 특성은 여전히 구별되며, 그 두 본성이 혼합되어 제 삼의 본성을 산출하지 않았다. 오히려 신성한 본성이 사람의 본성 안에 있었고 사람의 본성을 통하여 표현되었는데, 여기에 은혜와 실재가 충만하였다”(위트니스 리, 회복역 성경 요1:14 각주 2).

주님께서는 승천하신 후에도 여전히 사람의 아들(인자)이시라는 것은 부활하신 후에도 인성을 벗지 않으셨다는 것을 가리킨다. 여기에서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다루시는 것은 그분의 인성에 근거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인성 안에서 하나님을 증언하는 일에 완전히 승리하시고 성공하셨다.”(위트니스 리, 회복역 성경 계1:13 각주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인규 권사는 아래와 같이 터무니 없는 말로 억지로 이단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이인규 권사(세이연)의 주장 1
“지방교회와 거의 유사한 다락방의 기독론과 양태론(삼위일체의 비밀)
초대교회의 기독론 중에서 ‘아폴로네리우스’ 라고 하는 이단적 기독론이 있는데, 예수의 신성과 인성을 분리시켜 예수의 영만을 ‘하나님’으로 보는 견해로서 예수의 인성을 부정하는 사상이다.”

“다락방 의 가장 중요한 이단성은 두 가지 방향에서 볼 수 있다. 첫째, 이단 지방교회(위트니스 리)의 사상에 깊은 영향을 받아 양태론적 삼위일체와 신인양성을 분리하는 왜곡된 기독론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지방교회측의 반박: 한 마디로 지방 교회측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터무니없는 비방일 뿐입니다. 지방교회 측은 롬1:3-4처럼 그리스도의 양성을 구별하되, 분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만일 이런 양성의 구별마저 부인하면, ‘마리아가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말하는 결과에 이르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피조물이 창조주의 어머니>라는 참람한 모순에 빠진 것입니다.

(이인규 권사의 주장) 2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과 성령의 내주를 동일한 것이라고 하는 주장
지 방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신자와 동일하게 영?혼?육으로 분리시킴으로서, 성육신하신 예수를 성령이 내주한 신자와 동일하게 본다. 지방교회의 양태론적인 관점에서 보면 성령은 곧 성부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이다. 즉 예수를 성령(하나님)이 내주한 사람의 첫 샘플로 보는 것이며…”

지방교회측 반박: 성경은 참 하나님이신 주 예수님이 또한 참 사람임을 계시합니다. 성경은 또한 사람이신 그분에게 <사람의 영>, <사람의 혼>, 그리고 <사람의 몸>이 있으시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누구든지 그분의 인성이 죄 없으신 것 이외에, 우리와 다른 것이 또 있다는 식으로 암시 한다면 그는 주님의 사람의 영을 로고스로 대체했던 사람들처럼 인성부인 이단에 빠질 수 있습니다.

4. 공연히 트집을 잡는 식의 비 전문가다운 이단연구 태도

감리교인인 이인규 권사는 정식으로 신학을 한 적이 없습니다. 또한 그의 신앙관이 정밀 검증을 받는 적도 없는 것으로 압니다. 따라서 그의 글을 읽어 보면 논리의 비약이 심하고 이단이 아닌 것을 억지로 이단으로 몰아가는 것을 자주 목격합니다. 이러한 전문가라고 하기 어려운 모습들이 본 연구보고서 상에도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인규 권사(세이연)가 얼마나 무모하게 이단정죄를 일삼는지 몇 가지 예를 보겠습니다.

이인규권사(세이연)의 주장 1

“류광수 씨는 ‘그리스도의 비밀’, 혹은 ‘그리스도를 누려야 한다’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하는데, 이러한 표현은 지방교회 이단이 주로 사용하는 용어 중 하나다. 지방교회는 ‘하나님의 실제’라는 용어도 빈번하게 사용하는데, 류광수 씨에게서도 이 용어가 자주 발견된다….”

지방교회측의 반박: ‘그리스도의 비밀’이란 말은 성경본문 입니다(엡 3:4). 또한 ‘그리스도를 누린다’ 라는 말도 ‘그리스도를 먹고’[10] ‘ 성령을 마신다’[11] 는 성경 본문의 말씀을 체험적으로 적용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 말씀을 그대로 말하거나, 그 말씀을 우리의 삶 속에 적용하는 일에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누린다’는 말을 소위 지방교회만 사용한다는 주장도 억지입니다. 인터넷에 ‘누린다’ 라는 말을 검색어로 치면 수많은 자료들이 떠오를 것입니다.[12] 그들이 다 지방교회를 따라 그리한 것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는 억지일 뿐입니다. 이것은 이단문제와는 상관도 없습니다.

이인규 권사 (세이연) 의 주장 2

“<복음편지> 3과 어떻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가?
첫 째 “원죄가 없어야 한다. 창 3:15. 여인의 후손, 아담의 후손이 아니어야 됩니다. 아담의 후손은 전부 저주의 영을 다 받았습니다. 여인의 후손, 이 말은 아담의 후손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이 말은 원죄가 없다는 말입니다….”

“(이인규)이 말을 분석해 볼 때, 예수님에게 원죄가 없다는 것은 맞지만, 동정녀가 낳았기 때문에 죄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여자의 후손이므로 아담의 후손이 아니라는 뜻인가? 예수는 육신으로는 아담의 후손(눅 3:38)이고 다윗의 후손(마 1:1)이다. 즉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다는 말이 원죄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예수의 인성은 전적으로 마리아에게 취한 것이며, 우리와 동일한 사람이었지만 성령으로 잉태하셨으므로 무죄하게 태어난 것이다. 류광수 씨는 “예수의 영이 하나님이므로 죄가 없다”는 잘못된 양태론적 기독론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을 하고 있다고 보여 진다.”

지방교회측 반박: 위 인용문에서 류광수 목사는 여인의 후손이 곧 아담의 후손인데, 주 예수님은 이와 무관하게 ‘동정녀에게서 나셨음으로’ 예수님에게 원죄가 없으시다는 논리를 펼칩니다. 타당한 설명입니다. 그런데 이인규 권사는 이에 대하여 1) (동정녀가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하셨기에 무죄하다’는 식의 반론을 제기합니다. 2) 또한 뜬금없이 “여자의 후손이므로 아담의 후손이 아니라는 뜻인가?” 라고 반문합니다. 3) 더 나아가 “예수의 영이 하나님이므로 죄가 없다’는 말이라며 “양태론적 기독론”을 들먹입니다.

이런 억지 주장들에 대하여 류광수 목사측은 과연 반론을 펼칠 부분이 없을까요? 논리도 근거도 부실한 이러한 연구 결과가 권위를 갖지 못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일 것입니다.

이인규 권사(세이연)의 주장 3

윗트니스 리는 ‘왕을 누리려면 왕이 되어야 한다’면서 하나님을 누리는 방법을 두 가지로 소개하고 있다. 그중에 하나가 ‘임마누엘’이라고 한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이나 그리스도를 가장 잘 누릴 수 있는 길이 무엇이겠는가? 우리 자신이 하나님이 되고 그리스도가 되는 길일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그리스도를 누리라고 하시지 않는다”(윗트니스 리, <하나님을 누리는 길>, 81쪽).

지방교회측의 반박: 위 인용문에서 첫 문장이 위트니스 리의 말이 아님은 명백합니다. 그럼에도 따옴표가 그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 인용 내용도 위트니스 리가 ‘하나님을 누리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고 하면서 정작 마지막 문장은 정반대로 성경이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을 금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991년판 <하나님을 누리는 길>은 81쪽 전후 어디를 살펴 보아도 위와 같은 내용 자체가 아예 없습니다. 이것은 본 연구 보고서가 기본적인 1차 자료 제시방법 조차도 갖추지 못한 아마추어에 의해 작성된 것임을 보여주는 작은 창입니다.

참고로 위트니스 리는 위 책 81쪽에서, 창세기 18장의 여호와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주님을 누리는 길에 대한 설명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이여, 하나님을 호흡하기 위하여 그분 앞으로 나아갈 때 먼저 당신은 영 안으로 돌이켜서 영 안에서 그분을 뵈어야 한다. 그리고 잠시 그분 앞에서 잠잠하며 그분을 앙망하고 그분께 물어야 한다. 또한 그분을 기다리고 묵상하며 그분을 경배하고 찬미하기를 배우며 또한 약간의 중보기도를 갖는 것을 배워야 한다.”

결론

세이연 측은 정치색이 없이 “신뢰성있는 이단연구를 통해 한국교회를 보호하겠다” 라고 천명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물인 본 연구보고서를 살펴본 바에 의하면, 내용이 너무 부실하여 신뢰 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무리한 이단 정죄로 인해 한국교계에 더 큰 혼란을 가져 올 빌미만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박형택 목사, 진용식 목사 등이 대표로 있고, 한기총과 합동교단에서 삼신론자로 규정된 최삼경 목사가 상임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세이연 조직도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참고로 상임 위원회는 이단연구 대상을 결정하는 막강한 권한을 가집니다. 더구나 본 보고서 작성에 깊이 관여한 이인규 권사 역시 상임위원이며, 익히 알려진 친 최삼경 목사계 인사입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세이연의 본 연구보고서는 위에서 보았듯이 ‘새로운 이단성 발견’ 은 없고, 최 목사 또는 이 권사의 평소 주장을 정리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그 내용들은 성부만 하나님으로 믿는 여호와의 증인식 사상, 삼위를 분리된 세 하나님들로 보는 삼신론 이단 사상이 짙게 깔려 있는 등 문제가 많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따라서 세이연 측 연구보고서 상의 현재 주장을 그대로 받기보다는, 신뢰할 만한 전문 신학자 그룹을 통한 엄격한 재검증이 필요합니다. 아울러 한국 교계에서 그동안 당연시 되어왔던 상대방의 변론기회를 봉쇄한 일방적인 이단정죄 관행도 진지한 재 검토가 필요하다 할 것입니다.

 

한국지방교회
DCP Korea 진리변증위원회

 

 

 

참고

[1]건전한 성경교사들의 상호내재 개념은 이인규 권사의 그것과 판이하게 다르다. 다음을 보라. “성부는 전적으로 성자 안에 있고 성자는 전적으로 성부 안에 있다는 사실은, 성자께서 친히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가 내 안에 계시다"(요14:10)라고 선언하신 바와 같다 (존 칼빈, 기독교 강요1권, 성문, p169). “거룩한 삼위일체의 위격들은 분리할 수 있는 개체들이 아니다. 각각은 나머지 둘을 포함하며, 각각의 오심은 나머지 둘의 오심이다”(아우구스트스 스트롱, Systematic Theology (Phila delphia: The Judson Press, 1912) p 333)

[2]그 외에 다음 글도 참고하라.『삼일 하나님은 영원 과거에 그분의 신성한 계획 가운데서 신성한 삼일성의 두 번째 위격이 성육신되시고 그분의 영원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영원한 구속을 이루기 위해(엡 1:7-9)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함을 결정하셨다. 그러므로 신성한 삼일성의 두 번째 위격은 하나님의 어린양(요 1:29)이 되도록 창세 전에, 즉 영원 과거(벧전 1:19-20)에 정해지셨다.』 (위트니스 리, 신약의 결론, 그리스도편, 한국복음서원192쪽)

[3]이종성, 삼위일체론, 263쪽

[4]“또한 아우구스티누스는 단일성과 삼위성을 논하면서 위격들의 '상호내주'의 관점에서의 삼위일체성을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최고의 삼위일체의 경우에는 하나가 셋을 합한 것 만하며, 둘을 합해도 하나보다 더하지 않다. 그리고 그들은 각각 자체가 무한하시다. 그래서 하나 하나가 다른 하나 하나 안에 계시며, 모든 이 안에 계시다. 또 모든 이가 모든 이 안에 계시며, 모든 이가 한 이 안에 계신다' (김석환, 교부들의 삼위일체, 299쪽).

[5]로레인 뵈트너의 ‘삼일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라는 말이 담긴 영어원문은 다음과 같다. Since the three Persons of the Trinity possess the same identical, Each is truly God, exercising the same power, partaking equally of the Divine glory, and entitled to the same worship. When the word "Father" is used in our prayers, as for example in the Lord’s prayer, it does not refer exclusively to the first person of the Trinity, but to the three Persons as one God. The Triune God is our Father. Loraine Boettner, Studies in Theology (Phillipsburg, NJ: The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lishing Company, 1947), p. 107

[6]요8:16은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가 여전히 지상 사역시 아들과 함께 하신다고 말한다. 요 8:29, 16:32도 같은 내용을 말한다. 반대로 지상 사역시의 아들도 여전히 하늘에 계신 아버지 품 속에 계신다(요1:18, 동사가 현재시재임을 주목할 것). 또한 요3:13은 ‘하늘에서 내려 온 이가 (여전히) 하늘에 있다’고 말한다(KJV참조).

[7]혹자는 우리 안에 성령만 계시고 아들은 성령이 대리하기 때문에 직접 내주하실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월간 교회와신앙, 2001, 10월호, 122쪽). 그러나 이것은 요일3:24 본문에서 ‘그 영을 통하여’가 문맥상 동사인 ‘안다’를 수식함에도,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를 수식한다고 크게 오해한 결과일 뿐이다.

[8]히 2:14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히 2:17 ’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9]예수님은 우리와 같이 ‘사람의 영’( 안에서 격분하시고 괴로워하시며, he groaned in the spirit (KJV)요11:33), ‘사람의 혼’(지금 혼이 괴로우니 내가 무슨 말을 하면 되겠습니까?, Now is my soul troble(KJV),요12:27) 그리고 ‘사람의 몸’(요셉이 시신을 가져다가 깨끗한 세마포로 싸서, And when Joseph had taken the body, 마27:59)을 가지신다.

[10]‘나(예수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요6:57)

[11]‘우리가…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 13)

[12]“나이나 직업에 상관없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알아가는 은혜를 누린다(벧후3:18). 그리고 전인격적으로 닮아 간다(롬8:29)”-국민일보, 오정호 목사(새로남 교회), “자라는 것만큼 누린다”-CBS, 정정자 목사 “보는 것만큼 누린다”-백동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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