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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교회의 신앙과 생활 (1996. 8월)"  
 
 

1. 머리말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사역은 전세계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들의 사역을 통하여 수백만의 사람들이 축복을 받았으며 수 천개의 교회들이 세워졌습니다. 이 두 그리스도인 교사들의 사역은 또한 한국에서도 그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 한국에서도 80개 이상의 지방 교회들이 세워졌습니다.

이 두 교사들의 저서는 한국 내의 서점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과 일반인들 사이에, 이 두 사역자들의 신앙과 그들의 사역을 따르는 교회들의 실행에 대해 약간의 오해와 혼돈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번에 월간지 <교회와신앙>을 통하여 우리의 신앙과 실행을 모든 분들에게 알리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우리 구주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온전히 알기를 원하신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말합니다(딤전 2:3-4). 성경은 또한 모든 사람들이 진리를 온전히 알 수 있도록 우리의 가르침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온유함으로 바로잡으라고 명령합니다(딤후 2:25).

우리의 소망은, 지방교회 안에 있는 우리들이 추구하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추구하는 마음으로 앞으로 전개될 우리의 대화에 참여토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통적인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는 동일한 성경적인 믿음을 존중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한 성경의 근거가 없고 다만 사람의 전통에 속한 것들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또한 우리가 비성경적인 전통을 거절하는 것이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다소 유쾌하지 않게 한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바는, 진정으로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을 사랑하는 분들은 앞으로 연재될 우리측 기사를 기뻐할 것이며 또한 그것들에 의해 공급을 받을 것입니다.

미국에 있는 지방 교회들은 1960년도 초에 시작되었습니다. 갈급하고 추구하는 많은 믿는이들이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사역을 통해 인도되었습니다. 1970년도 말에 개인적으로 교회를 불쾌하게 생각하거나 어떤 가르침에 찬성하지 않았던 몇 사람이 지방교회를 이단시 하려는 의도로 비판적인 책을 출판했습니다. 이로 인해, 그들이 지방교회에 대해 잘못 묘사한 것을 바로 잡으려는 의견충돌이 시작되었습니다.

비판적인 몇 사람이 합당한 대화를 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문제는 명예훼손 혐의로 법정까지 비화되었습니다. 어려운 장시간의 소송 결과, 하나의 사건은 그들이 공개적인 사과문을 신문에 게재하고, 출판된 책들을 전부 회수하여 폐기하는 것으로 결말이 났고, 또다른 소송 사건은 그들의 책이 명예를 훼손하는 거짓된 내용과 의도가 있는 것으로 법적인 판결이 났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결과는, 지방교회의 참된 믿음과 실행이 재판 과정에서의 공개적인 토론을 통하여 널리 알려질 기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십 여년이 지난 오늘날 미국 기독교계에서 식견이 있는 저자들 중 어느 누구도 지방 교회들을 이단의 범주에 포함시키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미국 내의 광범위한 종교들에 대해 정통한 학자요, 목회자이기도 한 맬튼(Doctor J. G. Melton) 박사는, 지방교회가 플리머스 형제회로부터 근본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기록하면서 자신이 쓴 종교백과사전에서 <독립적인 근본주의 단체(Independant Fundamental Family)>의 일부로 분류했습니다. 뛰어난 성경주석가인 J.N. Darby와 시대주의 신학(Dispensational Theology)의 영향은 탁월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지방교회의 교리적인 관점에 동의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시대주의 신학과 개혁 신학의 논쟁은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오늘날 그 둘의 차이점은 또다시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사역을 따르는 사람들의 신선하고 살아있는 간증을 통해 밝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이 차이점에 대한 토론은, 지방교회의 신앙이 알려지지 않았던 십 여년 전과 비교할 때 다른 수준에 와 있습니다. 이 차이점에 대한 토론은 지방교회가 발행하는 신학 잡지인 <확증과비평>에 의해 현재 진행되고 있습니다.

향후 출판될 일련의 기사들은 지방 교회를 오해했거나, 또는 관심이 있는 한국의 독자들에게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가르침을 소개하기 위한 것입니다. 앞으로 최 목사님과의 토론에서 다룰 교리의 주된 네 항목들은, 1)신론 2) 기독론 3)인간론과 구원론 4) 교회론과 실행입니다.

그러나 이번 기사에서는 개괄적인 지방 교회의 신앙과 실행과 위에서 언급한 각 주제에 대한 간략한 내용들을 다룰 것입니다. 다음의 기사 내용들은 이미 미국 캘리포니아 애나하임에 있는 리빙 스트림 출판사에 의해 다른 인쇄 형태로 출판되었던 것들입니다.

2. 우리의 입장(Standing)

먼저, 우리는 어떠한 전통적인 성경 해석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에 따라 성경 위에 서 있습니다.

둘째로, 우리는 살아 있는 반석이시고, 기초돌이시며, 몸의 머리이시고 교회의 생명과 실제이신 그리스도 위에 서 있습니다.

셋째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참된 하나 위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종파나 교파나 초교파도 아니며, 우리는 각 지방에서 모든 믿는이들의 합일의 입장 위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피로 구속받고 성령으로 거듭난 모든 믿는 이들을 각 도시에 있는 한 교회의 지체들로 인정합니다.

3. 우리의 위임(Mission)

오늘날 우리 주님은 우주를 통치하고 계시며 하나님의 계획 또는 경륜을 집행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승천하시기 전에 그분은 제자들에게,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위임하셨습니다(마28:19-20). 모든 족속들을 제자로 삼으려면 주로 네 분야에서 우리의 수고가 요구됩니다.

즉, 우리는 복음전파와, 새 신자들을 먹임과, 성도들을 온전케 함과, 온전케 된 성도 들이 교회로 건축되도록 신언함을 위하여 수고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실행하도록 분부하신 위임입니다.

복음을 전파함

우리에게 위임된 첫번째 책임은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인들이 구원받아 그분의 몸을 건축하는 그리스도의 지체들이 되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합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구원은 얕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죄인들을 그리스도 의 지체들이 되게 합니다. 복음을 영접한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한 몸 안으로 침례받아(고전 12:12-13) 그분의 지체들이 됩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이 정도로까지 구원하십니다! 구원받은 죄인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로서 그분의 단체적인 표현이 되기 위하여 반드시 함께 건축되어야 합니다(엡 4:16).

주님은 이 땅 위에서 그분의 공생애 동안 많은 사람들을 방문하셨습니다(마 9:35, 막 6:6, 눅 13:22). 또한 그분은 제자들을 보내어 복음을 가지고 사람들을 방문하게 하셨습니다(눅 9:1-2, 10:1-9). 주님이 승천하신 후 초기 믿는 이들은 그분의 본을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지고 각처로 사람들을 방문하러 나갔습니다(행 8:1,4, 26:19-20).

저희도 오늘날 친척, 친구, 이웃, 동료들을 방문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좋은 소식을 그들과 함께 나눔으로써 같은 위임을 수행하고 있습니다(마 28:19-20, 막 16:15, 눅 24:47, 행 1:8).

새신자들을 먹임

모든 살아있는 것들과 같이, 새신자들도 생명 안에서 자라기 위해 양육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파하라는 위임을 받았지만 저희의 위임에는 저희를 통해 구원받은 사람들을 양육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주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그분의 어린 양들을 먹이라고 분부하셨습니다(요 21:15-17). 베드로는 주님의 분부를 엄숙히 받아들여 여러 해 후에도 그의 서신을 통해 주님의 양들을 여전히 먹이고 있었습니다.

한 서신에서 그는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 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 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 2:2)고 썼고, 교회의 인도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양무리를 먹이라”(벧전 5:2)고 권면했습니다.

바울도 믿는 이들을 양육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그의 한 서신에서 다음과 같이 썼습니 다. “오직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살전 2:7).

저희도 역시 믿는 이들의 양육에 관한 이러한 부담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양육을 통하여 새신자들이 계속 살아 있게 되고 온전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을 온전케 함

저희의 위임의 세번째 항목은 성도들을 온전케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인들에게 보낸 그의 서신에서 이것을 말합니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들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 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 4:11-12).

하나님은 모든 믿는 이들이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봉사의 일을 위해 온전케 되기를 갈망하십니다. 바울의 글에서 주님이 그분의 믿는 이들에게 이러한 온전케 하는 사역을 맡기신 것이 분명하므로 이것 또한 저희의 위임 중 하나입니다.

성도들은 소그룹(히 10:24-25)에서 서로 목양하고 서로 돌보고 서로 중보 기도하고 서로 가르침을 통하여 온전케 됩니다. 이것은 주로 성도들의 집에서 열명 내지 열 다섯 명이 한 그룹이 되어 실행됩니다. 이러한 소그룹 집회에서 형제 자매들은 상호성 안에서 서로 묻고 답변합니다. 교회 안에서 은사있는 성도들은 다른 성도들을 온전케 하고, 온전케 된 성도들은 사람들을 어느 정도 온전케 할 수 있습니다. 서로 안에 저장되어 있는 말씀들을 향해 열려있음으로 인해, 모든 성도들은 이러한 소그룹 집회 안에서 모든 지체들에 의해 온전케 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4장 16절에서 이러한 서로 온전케 함에 관하여 말합니다. “온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그리스도 안의 믿는 이들로서 우리는 모든 교회들 안에서 성도들이 온전케 됨을 추구합니다. 온전케 된

성도들을 신언(Prophesying)하도록 이끔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몸이 건축되기를 갈망하십니다. 성경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몸은 교회 집회에서 성도들이 신언할 때 건축됩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신언(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건축하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이요…신언하는 자는 교회를 건축하나니”(고전 14:3-4 원문참조). 여기서 말하는 신언은 교회를 건축하는 신언으로서 “장래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해 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사용한 고대 헬라어의 의미입니다.

이렇게 신언하는 것은 하나님을 위해 말하는 것이며 그리스도를 말해 내는 것으로서 성도들을 세우고 교회들을 건축합니다.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들만이 실행할 수 있는 특권이 있는 신성한 말함입니다. 사도 바울이 명령한 것처럼 모든 믿는 이들은 신언하기를 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고전 14:1). 이러한 신언이 그리스도의 몸의 건축을 완성합니다.

합당한 신언이 있으려면 소그룹보다는 좀더 큰 집회들이 필요합니다(고전 14:23-25). 이러한 집회는 교회가 작을 때에는 그 지방 교회 전체가 모인 것일 수도 있고 큰 교회일 경우는 지역 집회(district meeting)로 모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약 오십 명 가량 모 이는 집회에서는 모두가 하나씩 하나씩 신언할 수 있으며, 모두가 배우고 격려받을 수 있습니다(고전 14:31).

최종적으로 모든 믿는 이들은 그리스도의 몸이 건축되도록 하나님을 위해 말하고 그리스도를 말해내는(일반적으로 목사님들의 역 할이라고 이해하는) 이러한 기능 안으로 인도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네 가지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저희의 위임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까지 이러한 위임 안에 머물기를 갈망하며, 주님의 승리에 찬 재림을 가져올 그리스도의 몸의 건축이 완성되는 것을 기대합니다. 이 위대한 우주적 사업에 하나님과 함께 수고하는 것은 어떠한 특권인지!

4. 우리의 소망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나님에 의해 예정된 모든 사람들이 주 예수님을 믿게 되길 소망합니다. 또한 거듭난 모든 믿는 이들 이 다만 지식의 증가가 아니라 생명의 성장을 추구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모든 추구하는 믿는 이들이 교회의 이상을 보고 지금 거주하고 있는 각 지방 안에서 실제적인 교회생활 안으로 들어오길 소망합니다. 또한 우리는 그분의 신부가 예비되도록 주님께서 한 무리의 이기는 자들을 얻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다시 오심이 우리의 생명의 성장에 의해 앞당겨지고, 우리가 축복된 휴거 와 그분의 '오는 왕국'에 참여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5. 우리의 신앙

성경에 관하여

저희의 신앙의 첫번째 항목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성경에 관하여 사도 바울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호흡으로 된 것” (딤후 3:16 상)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 아래 경건한 사람들에 의해 쓰여졌습니다. 우리는 또한 성경이 완성된 신성한 계시를 담고 있음을 믿습니다.

저희의 신앙의 모든 방면들은 성경에 근거를 두며, 성경에 의해 통제를 받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말한 것을 창세기부터 요한계시 록까지 다 받아들이며, 성경이 말하는 것을 넘어선 사람의 생각을 다 거절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그분 자신과, 그분의 완전한 구원과, 사람을 위한 그분의 계획 혹은 경륜에 관한 그분의 계시를 우리에게 제공하는 하나님으로부터의 참되고도 객관적인 선물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정확성을 믿고, 그 무과실성을 견지합니다.

하나님에 관하여

물론 성경의 주제는 하나님이시요, 하나님 은 저희의 신앙의 대상이십니다. 성경의 계시로부터 우리는 우리 하나님이 유일하게 한 분이시면서 삼일(triune)이심을 믿습니다.

비록 이것이 우리 인간의 이해를 넘어선 것이기는 하나, 성경은 하나님이 유일하게 한 분(딤전 2:5)이시지만 동시에 셋(마 28:19)으로 구별되심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그분은 영원히 아버지, 아들, 영이십니다.

신성한 삼일성의 셋은 구별되지만 분리되지는 않습니다. 주 예수님이 요한복음 10장 38절에서 우리에게,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이라고 말씀하신 것같이, 아버지가 계시는 곳에 아들 또한 계십니다. 똑같은 상호내재가 또한 아들과 그 영 사이, 그 영과 아버지 사이에도 존재합니다. 삼일성의 셋 가운데서 아버지는 그분의 이름이 내포하는 바와 같이 신성한 삼일성의 근원이시고, 아들은 아버지의 표현이시며, 그 영은 아들의 모든 어떠하심과 아들이 소유하신 모든 것의 실제화이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의 이러한 세세한 점들은 단지 신학적인 난제들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셋-하나이시므로 우리에게는 그분을 체험하고 누릴 길이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삼일성의 셋을 믿는 이들의 체험과 관련지어 분명히 말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찌어다”(고후 13:13). 신약에 의하면 세 분 모두- 아버지, 아들, 그 영-가 믿는 이들 안에 계십니다 (엡 4:6, 요 14:23, 골 1:27, 요 14:17).

그리스도에 관하여

우리 믿는 이들은 그리스도인이라 불리웁니 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우주 안에서 가장 놀라운 분이시요, 우리는 그분의 이름으 으로 호칭되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그리스도는 영원히 하나님이십니다. 영원 과거에, 창세 전에 그분은 하나님이셨고, 지금도 하나님이시고, 영원히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어느날 그분은 사람이신 우리 주 예수가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온전 한 하나님이자 완전한 사람이십니다.

그분은 그분의 신성을 버리지 않고 처녀의 태 속에 잉태되어, 아기로 나셔서, 이 땅에서 인생을 사셨고, 대속하는, 만유를 포함한 죽음을 십자가에서 죽으시어 우리의 구속을 성취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사망에 매여 있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사흘 후에 부활하셔서 생명 주는 영(고전 15:45)이 되셨습니다. 그분의 신성의 능력이 사망을 삼키시고, 그분의 인성은 부활 하여 영화롭게 되셨습니다.

오늘 그분은 우리의 구속자이시자 우리 의 생명이십니다(골 3:4, 롬 8:10). 또한 그분은 승천하여 영광 안에 계시며 여전히 하나님이 시면서 여전히 사람이십니다. 그러한 분으로서 그리스도는 이제 우리의 구원의 주시요, 우리의 믿음을 온전케 하시는 분(히 2:10, 12:2)이십니다.

지금 그분은 하늘에 앉아 그분의 하늘에 속한 사역을 수행하고 계시며 하나님의 경륜을 성취하고 계십니다(행 5:31, 히 8:1-2, 롬 8:34). 우리는 그분이 곧 다시오실 것, 즉 하나님의 왕국을 가져 오셔서 천년왕국에서 온 땅을 통치하실 것(계 1:7, 11:15, 20:6)을 기 다립니다.

그 영에 관하여

우리는 삼일성의 셋째이신 성령이 동등하게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아버지는 신성한 삼일성의 근원이시고, 그 영은 신성한 삼일성 의 완결이십니다.

아버지가 가진 모든 것과 아버지의 모든 어떠하심이 아들 안에 체현되었고, 아들의 모든 어떠하심이 그 영으로 실제화 되었습니다. 이러므로 그 분은 실제의 영(요 15:26, 16:13, 요일 5:7)이라 불리웁니다. 그리스도의 어떠하심의 실제, 심지어 삼일 하나님의 실제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이루셨습니다(눅 1:35, 마 1:18,20). 그분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인성과, 인생과, 죽음을 실제화하기 때문 에 예수의 영(행 16:7)이라 불리우고, 그분에 의해 그리스도의 신성과 부활과 승천이 우리에게 실제가 되므로 그분은 그리스도의 영 (롬 8:9)이라고 불리웁니다.

그분이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불리우는 것은, 그분이 믿는 이들에게 그분의 인성과, 죽음과, 신성과, 부활로 복합된, 넘치 는 공급의 근원(빌 1:19)이심을 가리킵니다. 이 영이 생명의 영이요, 내주하는 영이십니다(롬 8:2,11).

주 영으로서 그분은 우리를 새롭게 하심으로 우리를 변화시키십니다(고후 3:18, 딛 3:5). 만유를 포함한 영은 출애굽기 30장 23 -31절에 있는 복합된 관유로 예표된 것과 같이, 우리의 거룩한 기름부음(고후 1:21, 요일 2:20, 27)입니다. 그러한 분으로서 그분은 우리에게 인이 되시고 보증이 되십니다(엡 1:13-14).

매일 그 영은 우리의 보혜사(요 14:16-17)로서 우리를 위로하시고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우리를 공급하시며 우리를 위해 중보 기 도하십니다(롬 8:4,23).

그러한 영이 본질적으로 우리의 생명로 우리 안으로 내쉬어졌고(요 20:22), 경륜적으로 우리 위에 능력으로 부어졌습니다(행 2:1-4,17). 타락의 시대에, 이 놀라운 영은 하나님의 일곱 영으로서(계1:4, 4:5, 5:6) 일곱 배로 강화되었습니다. 결국 삼일 하나님의 완결이신 이 강화된 영은, 영원토록 삼일 하나님의 나타남과 표현을 위한 신부(계 22:17)인, 구속받고 거듭나고 새로워지고 변화되고 영화롭게 된 교회와 하나되는 것입니다.

구원에 관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사람을 위하여 충분하고 완전한 구원을 예비하셨습니다. 이 충분한 구원은 우리의 온 존재인 영과 혼 과 몸을 포함합니다. 사람은 타락하여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과, 영광의 무거운 요구를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요구를 이루셨습 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셨고, 우리를 그분과 화목케 하셨으며,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의가 되심으로 우리를 의롭다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에 근거하여 하나님은, 구속된 자들을 그분의 자녀가 될 수 있도록 그분의 영 으로 거듭나게 하십니다. 이 모든 사실을 믿고 주님을 영접할 때 거듭나게 됩니다. 이제 하나님의 생명과 본성을 소유한 믿는 이들은 일상생활 가운데서 매일의 구원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안에서, 사람의 영은 거듭났고 혼은 변화되고 있으며 몸은 변형될 것입니다. 영원한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은혜로 인한 것이지 우리의 행위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불신자를 구원시키기 위하여 우리는 믿음과, 기도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강조합니다. 로마서 10장 9-10절에 의하면, 사람이 구원받으려면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해야 합니다.

사람이 한 번 구원받았으면 그는 구원의 확신과 구원의 견고함 모두를 가질 수 있습 니다. 우리가 한 번 구원받았으면 영원히 구원받은 것입니다.

6. 우리의 실행들

1)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관련하여

거듭남: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거듭남으로 시작합니다. 거듭나는 것은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하여 우리의 영 안에서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이고(요 3:6), 우리 영 안에 분배된 하나님의 생명과 본성을 갖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생명 자체에 의해 우리의 영을 살아 나게 합니다.

분별: 참된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이 타락하고 악한 세상으로부터의 합당한 분별을 요구합니다. 이러한 분별은 형식적이고 사람이 만든 규율에 의한 것이 아니고, 우리 안에 사시는 거룩하신 분의 생명과 본성에 의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구속하는 피와 성령과 주 예수님의 이름 안에서 하나님께로 분별됩니다.

합당한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살기 위하여 우리는 그러한 분별된 위치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속하지는 않았지만 세상 안에서 경건한 생활을 사는 것입니다.

헌신: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헌신의 생활입니다. 주님께 헌신된다는 것은 주님께 전적으로 드려지는 것이며, 그분을 위해서 어떤 일 을 하거나 어떤 것이 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 자신을 그분께 유용하도록 산 제물로 드림으로 그분이 선한 기쁘심을 따라서 우리 위에서와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을 사랑하고 기쁨으로 그분께 속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그분께 헌신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그분이 그분의 보혈로 우리를 사셨기 때문에 우리가 이미 그분께 속했음을 인정합니다. 지방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은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하나님과 그분의 영원한 목적의 성취를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함: 그리스도인의 생활 가운데서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그분을 사랑하기를 갈망하십니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전적으로 사랑스러운 분이신 것과 그분이 우리의 마음을 얻으셨음과 우리가 우리 자신의 사랑이 아닌 그분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인하여 그분을 사랑함을 간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지방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은 규칙적으로 성경을 읽도록 심지어 1년에 1회씩 성경을 통독하도록 격려받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읽고 연구할 뿐 아니라 신령한 음식인 말씀을 기도함으로 받아 들입니다. 성령께로부터 받았다고 주장하는 모든 가르침, 영감, 인도하심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는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 점검되어야 합니다.

성경이 많은 것들에 대해 하나님의 생각을 계시하고 있지만, 우리에게 있어서 성경은 주로 교리의 책이 아니고 생명의 책입니다. 우리는 다만 지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경을 기도하며 읽음으로써 살아 있는 말씀이신 주 예수님을 접촉하기 위해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기도: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또한 기도의 생활입니다. 기도 안에서 우리는 주님과의 달콤하고 친밀한 개인적인 교통을 누립니다. 기도함으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의존과, 그분께 대한 우리의 복종과, 그분의 목적을 성취하도록 그분과 협력하고자 하는 우리의 갈망을 선포합니다. 지방교회 안에 있는 모든 성도들은 날마다 개인 기도의 시간을 갖도록 격려받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체험함: 성경 안에 있는 하나님의 계시로부터,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사실상 우리 안에 살아 계신 그리스도 자신임을 보았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한 체험에 큰 강조점을 두고 있습니다.

신약의 서신들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계시되시고, 우리 안에 사시고, 우리 안에 형상을 이루고 계시고, 우리 안에서 그분의 거처를 정하고 계시며, 우리 안에서 확대(존귀히)되시며, 또한 우리 안에서 모든 것의 모든 것 되십니다.

밖의 본을 따라서 그리스도를 모방하는 대신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살아내고, 내주하시는 그리스도가 우리의 내적인 전 존재를 점령하시도록 허락함으로 그리스도에 의해 살고 매일의 생활 안에서 우리를 통하여 그 분 자신을 표현하기를 추구합니다.

십자가에 못박힌 생활: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생활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부끄러워 하지 않으며 또한 십자가의 좁은 길을 따라 주님을 따르는 일에서 후퇴하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를 참되게 체 험하고 그분에 의해 살고자 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생활 속에서 십자가의 주관적인 역사를 날마다 체험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시각 안에서 타락한 육신의 추악함을 보았으며, 그것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하심에 동의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자아와 천연적인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한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그분의 부활 생명의 풍성함 안에서 그분에 의해 살도록 하는 그리스도의 죽음의 내적인 역사하심을 환영합니다.

양육: 만일 우리가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살고자 한다면 우리는 신령한 음식과 신령한 음료로 매일 양육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신령한 음식과 음료이신 그리스도께 참여함을 강조하며, 그 영 안에서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생명 공급이신 그분을 누립니다.

그분 자신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를 인하여 살리라”(요 6:57)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세상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하늘로 서 내려 오신 산 떡이시고, 생명의 떡이시고, 하나님의 떡이시며(요 6:33,35,51), 우리는 날마다 그분에 의해 양육을 받습니다.

생명의 성장: 지방교회들 안에 있는 저희는 그리스도인의 생활 안에서 정상적으로 생명이 성장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우 리는 영적인 어린 아이로 남아있는 것에 만족할 수 없습니다. 사람의 생명과 마찬가지로, 신성한 생명도 성숙하기 위해서는 정상적 인 발육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추구하는 자들로서 우리는 생명의 성장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표현하고 그분의 권위를 대표하며 그분의 대적을 패배시키기 위하여 영적인 전쟁에 참여하도록 장성한 사람이 되기 를 갈망합니다.

인간 생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모든 면에서 극단적이지 않으며 균형있고 정상적인 인간생활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전 존재인 영과 혼과 몸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보존되기를 갈망합니다. 우리는 모든 인간관계에서 예수님의 인성을 표현하기를 추구하며 가정, 학교, 이웃, 직장 등 인간 생활의 모든 터전에서 그 분의 귀한 간증을 짊어지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매일의 인간 생활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 리스도 안에서 성장할수록 더 진실된 사람이 되며, 높여지고 영화롭게 된 예수님의 인성을 더 실제적인 방법 안에서 누릴 수 있음 을 발견합니다.

그 영: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생활입니다. 그 영을 따라 행하는 것은 그 영을 따라서 생활하며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영에 두고 몸의 행실을 죽음에 넘겨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롬 8:6,13). 우리가 영을 따라 살 때 하나님의 모든 의로운 요구가 우리 안에서 저절로 이뤄집니다. 오직 영을 따라 살고 영을 따라 행함으로서만 성경 안에 계시된 신성한 것들이 우리에게 실제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하여 우리는 그 영을 알아야 하고, 그 영 안에서 살아야 하며, 그 영을 따라 행동해야 합 니다.

변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의 거듭남과 몸의 변형을 알고 있지만 혼의 변화라는 핵심적인 문제를 소홀히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오직 마음(원문은 생각, mind)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롬 12:2)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명의 영의 내적인 역사로 인하여 우리의 혼이 성분적으로 변화될 필요가 있음을 인정합니다.

우리가 변화될 때 내적인 변화가 우리 안에서 일어납니다. 우리의 혼이 하나님의 요소로 적셔질 때 순수하게 되고 거룩하게 됩니 다. 그럴 때 혼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기능 곧, 우리의 거듭난 영 안에 거하시는 주님을 표현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혼의 변화는 주님의 재림시 그분을 만나기 위한 우리의 준비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그분의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임재 안에 거하고자 하는 사람은 위치적으로 거룩해져야 할 뿐만 아니라 성분적으로도 변화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소극적으로는 십자가의 역사와 적극적으로는 그 영의 역사를 필요로 합니다.

변형: 끝으로, 그리스도인의 생명에 속한 체험의 절정으로서 우리의 몸은 변형되어 주님의 영광스러운 몸처럼 될 것입니다(빌 3:21). 성경에서는 이것을 몸의 구속, 즉 아들의 명분의 충만함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거듭남으로 시작해서 변화를 거치고 몸의 변형으로 완결되는 것입니다.

2) 교회 생활과 관련하여

단체생활: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우리 안으로부터 살아내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본질적으로 단체생활입니다. 신약에 있는 많은 표 현들이 이것을 확증합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의 양떼 안에 있는 양들이며 하나님의 건축 안의 산돌들이며 포도나무의 가지들이며 그 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입니다.

비록 우리가 개인들이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더 이상 개인주의적으로 살아서는 안됩니다. 즉 우리는 자신의 흥미, 자신의 활동, 자신의 목표만을 추구해서는 안됩니다. 반대로 하나님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을 인식하며, 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보며, 교회의 건축을 관심하는, 단체의 생활을 하길 갈망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뿐 아니라 정상적인 교회 생활의 회복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머리되심: 교회생활 안에서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머리되심을 존중해야 합니다. 우리는 몸이고 그분은 이 몸의 유일한 머리이십니다. 누구도, 어떤 것도, 그리스도의 머리되심을 탈취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머리되심을 손상하는 어떠한 제도, 조직, 인도 직분 등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우리 가운데 영구적이고, 공식적이 며, 조직화된 인도 직분은 없습니다. 더우기 우리 가운데 계급도 없습니다.

오히려 몸의 모든 지체들은 머리와 직접 교통하며 그들의 생활과 행동에 관한 모든 지시를 그분으로부터 받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몸의 지체들 사이에 중개자나 중간 계급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교통: 그리스도의 머리되심을 존중하지만 우리는 동시에 그리스도의 몸의 교통을 누립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더이상 개인적인 방식으로 살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반대로 우리는 몸의 지체들 사이 의 교통을 지극히 소중하게 여깁니다. 우리 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순환되는 생명의 흐름을 얼마나 누리는지! 우리는 이 흐름, 이 교통이 축복된 실제임을 간증합니다.

하나됨: 교회생활 안에서 또 하나의 필수적인 중점은 ‘하나를 지킴’입니다.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전에 주님은 그분이 아버지와 하나이듯이 그분을 믿는 이들이 하나될 수 있도록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유일한 하나를 힘써 지켜야 합니다.

이 그리스도의 몸은 ‘합일의 입장’ 위에서 그 지방에 있는 모든 참된 믿는 이들로 이뤄진 지방교회들 안에서 표현됩니다. 우리는 하나를 주의해야 합니다. 따라서 저희는 분열을 거부하고 미워합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주님의 간증이 분열된 것은 어떠한 부끄러움이며 비난거리인지!

교회생활 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유일한 하나를 위해서 있습니다. 이 하나를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는 ‘합일의 입장’ 위에서 믿는 이들로서 모이며 같은 믿음(딛 1:4)을 따라 모든 믿는 이들을 받으며, 우리가 하나 안으로 온전케 되기 위해 아버지 안에서와 아버지의 영광 안에서 그분과 함께 있을 수 있도록 그리스도 안에서의 성장을 추구합니다.

우리가 믿는 바로는 요한복음 17장의 주님의 기도는 땅에서 응답받을 것이며 우리가 하나 안으로 온전케 될 때 세상은 아버지가 아들을 보내셨음을 믿고 알게 될 것입니다.

서로 돌아봄: 교회생활을 실행함에 있어서 우리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의 믿는 이들을 실질적인 방법으로 돌아봅니다. 우리는 피차의 짐을 나누어지며, 손님들을 접대하며, 교통을 위해 가정을 열며,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서 사랑스러운 봉사를 통해 즐겁게 형제 자매들의 실질적인 필요들을 채웁니다.

우리는 서로를 격려하며, 서로를 시원케 하며, 서로에게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공급하며, 서로를 건축합니다. 저희의 교회생활은 집회 장소에서의 모임에만 제한되지 않고 항상 계속됩니다.

양심: 교회생활 안에서 우리는 또한 다른 사람의 양심을 존중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믿는 이들이 그들의 양심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받은 빛 안에서 주님을 따를 자유가 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일상 생활을 통제하는 어떤 외적 인 형식이나 조종이 없으며 우리의 양심을 무시하는 권위자가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 모두는 자신의 양심을 철저히 처리함으로써 하나님과 사람을 향해 거리낌 없는 양심을 유지하도록 격려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양심을 주의하며 또한 다른 사람의 양심도 주의합니다.

3) 집회와 관련하여

가정 집회 : 저희의 가장 간단한 집회는 가정집회입니다. 이러한 집회들은 새신자들을 양육하기 위해 성도들이나 새로 구원받은 믿는 이의 집에서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친척, 친구, 이웃, 동료들로 하여금 주님의 구원을 받아들이도록 이끌기 위하여 적어도 일주일 에 한 번씩은 모입니다. 일단 그들이 구원을 받으면 그들을 양육하고 그리스도인의 생활 안에서 자라도록 돕기 위해 우리는 가정에서 그들과 모이기를 계속합니다.

이러한 집회들은 대개 한두 명의 양육하는 성도들과 새신자들로 이루어지는 작은 집회입니다. 이러한 집회를 할 때 우리는 새신자들로 하여금 기도, 찬송, 교통, 성경 읽기, 성경 공부를 통해 주님을 누리도록 도와 줍니다.

온전케 하는 집회: 우리는 모든 믿는 이들이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는 각자의 기능을 다할 수 있기를 갈망합니다. 이를 위하여 에베소서 4장 12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성도들을 온전케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성도들을 온전케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그들에게 자신의 기능을 발휘할 기회를 자주 주는 것임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로 이러한 목적을 위해 온전케 하는 집회를 갖습니다. 이러한 집회는 열 명 내지 열 다섯 명의 형제 자매들로 이루지며 역시 성도들의 가정에서 모입니다. 이러한 집회는 많은 상호성 안에서 가르치고, 묻고, 대답하고, 목양하고, 중보 기도하고, 돌보는 것이 특징입니다. 모든 성도들은 실질적으로 도움을 입을 수 있으며,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공급하는 그들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집회를 통해 우리는 기능에 있어서 온전케 되도록 사랑 안에서 다른 이들에 의해 가르침을 받을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0장 24-25절의 말씀처럼, 이러한 집회 안에서 우리는 서로 격려하며 서로 권면합니다.

교회집회: 진리의 기둥과 터인 교회(딤전 3:15)는 그 지방에서 단체적으로 주님을 표현하기 위해 함께 모입니다. 교회 집회는 믿는 이들의 다른 집회와는 다른 특별한 기능을 수행합니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집회는 ‘만찬집회’ 즉 ‘떡을 떼는 집회’(고전 10:14-22, 11:17-34)입니다. 이 집회에서 우리 믿는 이들은 우리의 누림을 위해 주님의 피와 몸의 교통 에 참여하며(고전 10:16-17) 또한 주님의 누림을 위해 주님을 기념합니다(고전 11:24-25). 우리가 참여하는 떡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부서진 주님의 몸을 상징할 뿐 아니라 많은 지체들로 이뤄진 주님의 비밀한 몸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주님의 상에 참여할 때 우리는 사도 바울이 권면한 것처럼 “몸을 분변합니다”(고전 11:29). 이것은 우리가 주님의 몸에 관해 우리 자신들을 살펴보아 우리가 개인적으로 분열되었거나 우리의 집회가 분열된 것인지를 점검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교회인 우리의 입장은 그리스도의 몸의 하나를 표현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만찬집회를 통해 이 하나에 참여하고, 이 하나를 누리며, 이 하나를 공개적으로 보여 줍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인들에게 보낸 첫번째 서신에서 또 다른 종류의 교회 집회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 꼬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건축 을 위하여 하라"(14:26 원문참조).

이것은 모든 형제 자매들이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기 위해 그들의 말하는 기능을 발휘하는 집회입니다. 이런 실행을 사도 바울은 신언(예언, prophesying)이라고 부릅니다.

이 구절에서 신언의 주된 의미는 '장래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해내는 것”으로서, 믿는이들을 가르치고 교회를 건축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하나님을 위해, 그리스도를 말해내는 것입니다(고전 14:3-4).

이렇게 "모든 성도들이 신언하는 집회"는 그 지방에 있는 한 교회인 형제 자매들에게 필요한 가르침과, 계시와, 위로와, 권면을 주 는데, 이것은 은사있는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모든 지체들에 의해서 상호적으로 행해집니다(고전 14:1, 31).

우리는 또한 교회로서 함께 기도하기 위해 모입니다. 신약에는 성도들이 기도하기 위해 모인 예가 많이 있습니다(행 2:42, 4:23-31, 12:5). 교회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경륜을 수행하기 위해, 하나님의 대적의 활동 을 묶기 위해, 지방 교회들의 필요들을 위해 기도할 목적으로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은 모입니다. 이러한 집회에서 모든 성도들은 교회를 통한 주님의 움직이심을 위해 자신의 부담을 쏟아내는 짧고 해방된 기도를 함으로써 하나씩 하나씩 기능을 발휘합니다.

큰 교회에서는 성도들이 기능을 나타낼 수 있는 기회를 더 갖도록 오십 명 내외의 성도들이 지역별로 모여 집회를 합니다. 만찬 집회, 신언 집회, 기도 집회도 가끔씩 지역별로 모입니다.

사역 집회: 신약의 본을 따라 저희에게는 말씀을 전하는 집회가 있습니다. 이러한 집회에서는 은사있는 지체들이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가르치며, 성도들을 훈련시키고, 성경의 어떤 진리를 전하거나 성경의 어떤 부분의 연구를 인도합니다. 베드로의 전파(행 2:14, 3:12, 10:34)나 바울의 가르침(행 19:9-10, 20:7, 28:30, 31)을 위해 열렸던 집회들은 이러한 사역 집회의 본입니다.

이러한 사역 집회의 주된 역할은 이 방면에 은사있는 몇몇 사람들이 감당하지만 이런 집회에 참석한 성도들에 의한 추가적인 나눔(sharing)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역집회에서도 상호적인 말함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사역 집회에서 성도들은, 다른 어떤 집회에서 보다 더 온전케 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단체적인 생활이며 우리의 단체성의 대부분은 집회에서 표현됩니다. 성경에서 권면하는 바와 같이 우리는 모 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모여야 합니다(히 10:24-25).

질문들에 대한 답변

저희의 신앙과 실행에 흥미를 가지신 분들은 저희에게 많은 질문을 합니다. 질문들 중 일부에 대한 답변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여러분이 다니는 교회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답변: 지방교회들은 이름을 가지지 않습 니다. 저희가 붙잡고 존귀하게 여기는 유일한 이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다른 이름을 가지는 것은 그분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방교회”라는 말은 이름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방적인 특성과 교회의 표현, 곧 그 지방에 있는 교회라는 의미입니다.

지방교회(local church)라는 단어를 대문자로 쓰는 것은 큰 실수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할 경우 우리의 이름이 “지방교회”라는 인상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치 달이 어느 지방에서 보이든 다만 달이듯이 교회도 어느 지방에 세워졌든 다만 교회입니다.

교회가 예루살렘에 세워졌을 때 그것은 다만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로 알려졌으며(행 8:1), 안디옥에 세워졌을 때 다만 안디옥에 있는 교회입니다(행 13:1). 마찬가지로, 오늘날 서울에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모두 서울에 있는 교회(The Church in Seoul)입니다. 지방 교회들로서 우리는 참 하나의 입장 위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모입니다.

2. "회복"(recovery)이 무엇입니까?

답변: "회복하다"라는 말은 잃어버렸던 어떤 것을 다시 얻거나, 어떤 것을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려 놓는 것을 의미합니다. "회복"은 손상 또는 손실이 발생한 후 정상적인 상태로의 복원 또는 되돌려짐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것을 회복하고 계신다고 말하는 것은 교회 역사의 과정 속에서 그것들이 잃어버렸거나 잘못 사용되었거나 타락되었지만 하나님이 그것들을 원래의 모습이나 상태로 복구하고 계심을 의미합니다.

교회가 여러 세기의 교회사를 통하여 하락되어 왔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님의 원래의 의도대로 복구될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에 관하여, 저희의 이상은 현재의 상황이나 전통적인 실행에 의해서가 아니라, 말씀에 계시된 하나님의 원래의 의도와 그분의 변함없는 기준에 의해 통제받습니다. 우리는 교회에 대한 신약의 계시를 단지 역사적인 선례가 아닌 현재의 교회 실행을 위한 규범으로 간주합니다.

하나님의 회복은 20세기에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회복이 시작된 정확한 날을 확정하긴 어렵지만, 편의상 종교 개혁 때로 봅니다. 회복은 종교개혁 이후로 여러 단계를 거쳤는데, 진젠돌프의 인도 아래 보헤미아에서 교회생활의 부분적인 회복이 있었고, 플리머스 형제회를 통하여 많은 귀한 성경 진리들이 계시되는 데까지 전진했고, 그 후 속 생명의 참된 체험에까지 나아갔습니다. 지금 하나님의 회복은 그리스도의 몸의 표현인 참된 지방교회를 건축하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오늘날 그분의 회복 안에서 주님은 두 가지를 행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그리스도의 풍성한 체험, 즉 우리의 생명과 모든 것 되시는 그리스도의 누림을 회복하고 계시고 또한 그분은 교회 생활의 실제를 회복하고 계십니다.

이 두 가지는 함께 진행됩니다. 왜냐하면 실제적인 교회 생활은 그리스도의 풍성을 누린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주님의 회복 안에 있는 우리는 그리스도가 측량할 수 없이 풍성하시며, 우리의 누림을 위한 만유를 포함한 분이심을 간증합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의 계시에 따른 교회생활을 실행하도록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담을 주셨음을 간증합니다.

3.'기도로 말씀읽기'가 무엇입니까?

답변: '기도로 말씀읽기'(pray-reading)라는 말은 성경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는 우리의 실행을 보여주는 복합어입니다. 우리는 말씀 안에 포함된 생명 요소를 누리기 위해 말씀을 기도로 읽습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말씀을 영적인 양식으로 누립니다.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도로 읽음으로써 우리는 양육되고, 강해지고, 영감을 얻는다는 것을 간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기도로 읽고, 성경 말씀들을 반복해서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사실은 성경을 정규적으로 읽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 깊게 연구하는 것을 무시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4. 예수님을 먹고 마시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답변: 이 단어는 오늘날 일부 사람들을 괴롭히는데 이는 마치 주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을 괴롭혔던 것과 같습니다. 요한복음 6장에서 주님은 그분의 살을 먹고 그분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우리 속에 생명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살은 참된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체험 가운데서 그리스도는 구속하시는 어린양이시며 생명나무이십니다. 그분에 의해 살려면 우리는 어린양이시며 생명나무이신 그분께 참여할 필요가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주님은 우리의 생수이십니다. 우리가 그분을 마실 때 우리는 만족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먹고 마시는 것은 우리의 영적 양식이요, 음료인 말씀을 통해, 영 안에서 그분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5. 하나님의 경륜이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답변: "경륜"(economy)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가정 행정"을 의미하는 "오이코노미아"에서 온 것입니다. 그 단어는 또한 청지기직 분, 행정, 분배, 즉 분배의 과정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성경을 통해서 계시된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의 빛 비춤 안에서 볼 때, 하나님의 경륜은 교회를 산출하고 건축하기 위해 하나님 자신을 우리 안에 분배하는 하나님의 신성한 행정을 가리킵니다.

6. 여러분은 삼일성(삼위일체)에 관하여

삼위양식론(양태론)을 믿습니까?

답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삼위양식론은 이단입니다. 삼위양식론자들은 신격의 셋, 즉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영원히 동시 존재한 다고 가르치지 않고 그 셋은 다만 신성한 본질의 일시적인 나타남이라고 주장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따라서 하나님은 본질적으 으로 하나 안에 셋이며 셋 안의 하나이심을 믿습니다. 우리는 신격 안의 영원한 구별과 세 위격의 동시 존재를 분명히 인정합니다. 그러나 삼일성에 대한 우리의 강조점은 하나님의 본성을 교리적으로 분석하는 데 있지 않고 우리의 생명과 모든 것되신 삼일 하나 님을 우리 안에 분배받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에 관한 교리의 정통성은 우리의 가르침이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에 일치하는가 일치하지 않는가에 있습니다. 삼일 하나님에 관한 우리의 신앙이 성경의 빛 안에서 공정하게 고려된다면, 우리가 삼위 양식론이나 삼신론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에 따른 삼일 하나님의 계시를 믿고 있음이 밝혀질 것입니다.

7. 여러분은 사탄이 사람의 몸 안에 있다고 가르칩니까?

답변: 사람이 선악과를 먹으므로 타락했을 때 죄, 곧 사탄의 본성이 사람의 몸 안으로 주입되었고 사람의 몸은 육체로 변질되었습 니다. 타락은 단순한 외적인 범죄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또한 우리의 존재를 내적으로 중독시키고 오염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로마서 5장부터 7장에 의하면, 죄는 우리의 지체 안에서 실질적인 사탄의 인격으로 역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탄이 죄의 형태로 사람의 육체 안에 거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탄이 사람의 몸 외부에 객관 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사탄이 공중의 권세를 잡은 영이라고 분명히 말하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서 성경은 타락한 사람이 마귀의 자녀며 마귀는 그들의 아버지임을 계시합니다(요일 3:10, 요 8:44). 마귀의 자녀가 되는 것은 사 탄의 생명과 본성을 가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체 안에 사탄의 생명과 본성이 있다는 의미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사탄이 죄의 형태로 육체 안에 거한다고 말합니다.

8. 역사적이며 제도적인 기독교에 대한 여러분의 태도는 무엇입니까?

답변: 우리는 역사적이며 조직적이며 제도적인 기독교에 속하지 않고 분리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기독교를 비성경적인 가르침들과 실행들이 많이 섞여 있는 조직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계시된 교회생활의 참된 회복을 위하여 우리는 주님의 이름 안에서 각 지방의 참된 "하나"의 입장 위에서 모입니다.

9. 다른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여러분의 태도는 무엇입니까?

답변: 분명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반드시 지방교회 안에 있어야 한다고 믿지도 않으며 그렇게 가르치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천주교 안에, 교파들 안에, 독립된 단체들 안에, 피로 씻음 받고 그리스도 안에서 영으로 거듭난 참된 믿는 이들이 많다고 인정하며 그분들을 주님 안에 있는 형제 자매로 받습니다.

비록 양심을 위하여 우리가 조직된 종교와 분리되어 있지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 자매님들과는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주님께 신실함으로 우리는 주의 간증을 위하여 교회의 유일한 입장 위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위치를 좁고 배타적이고 분열적인 영으로 취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우리를 받으셨듯이 모든 믿는 이들을 받습니다.

10. 정부에 대한 여러분의 태도는 무엇입니까?

답변: 성경에 의하면 인간의 정부는 평화를 지키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세우신 것입니다. 양심을 위하여 모든 그리 스도인들은 사회 권위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부의 모든 권위에 복종하며 또한 그들에게 순종하고 국가와 지역의 좋은 시민으로서 살고 있습니다. 저희는 하나님이 세우신 인간 정부에 대한 모든 책임을 다합니다.

참고자료

1.지방교회의 신앙과 생활, 1978 Living Stream Ministry, Anaheim

2.확증과 비평, Vol.1, No. 2, 1996 Living Stream Ministry, Anaheim

3.전도지, "우리의 위임", "우리의 신앙"

Daniel Towle/ 미국 캘리포니아 플러톤교회 목회자

조동욱/ 미국 캘리포니아 플러톤교회 목회자

<1996. 8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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