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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 하나님에 관한 분명한 성경의 계시
 
 

윗트니스리

이 메세지의 모든 요점은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임

이사야서 9장 6절을 봅시다,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이 아기는 누구입니까? 예수님입니다. 이 아기가 어디에서 났습니까?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났습니다.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이 아들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입니다. 누구의 아들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서 그의 독생자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을 뿐 아니라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계속해서 그 구절은 “그 이름은 기묘자라”고 합니다. 왜 기묘자라고 불리웁니까? 왜냐하면 그분이 단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분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고 그분을 충만히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그분은 기묘자이십니다. 그래서 첫번째 이름 혹은 첫번째 명칭은 기묘자이십니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기묘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철저하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기묘하다고 합니다!

다음으로 그분은 모사입니다. 주 예수님은 최고의 모사이십니다. 세번째로 그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불리우십니다. 우리는 반드시 예수라는 이름으로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태어난 아기가 전능하신 하나님이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을 믿으십니까? 모든 유대인들을 이것을 믿지 않습니다. 아기 예수가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지 않습니다. 만약 그들이 믿었다면 즉시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었을 것입니다. 저는 믿습니다! 내 하나님은 예수님입니다! 내 하나님은 그 어린 아기입니다!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마리아에게 낳은 바 된 그 아기는 내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넷째로, 그분은 영존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우리에게 주신 아들은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불립니다. 그분이 아들입니까 아니면 아버지입니까? 만약 그 우리에게 난 그 아기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으신다면 여러분은 우리에게 주신 아들이 영존하시는 아버지라는 것도 믿어야 합니다. 여기에 두 노선이 있습니다. 한 노선은 아기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다른 노선은 아들이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합니다. 만약 첫번째 노선을 믿으신다면 두번째도 믿으셔야 합니다. 어떤 이들은 처음 것은 믿지만 두번째 것은 믿지 않습니다. 첫번째 노선은 우리에게 낳은바 된 아기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그후 같은 구절에서 두번째 노선은 우리에게 아들을 주셨는데 이 아들은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불리운다는 것입니다. 이 두 노선들을 믿으십니까? 그러면 아기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시인해야 하듯 같은 방식으로 아들이 영존하시는 아버지이심을 시인해야 합니다. 아들이 아버지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이사야서 9장 6절의 온 구절을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오직 반만 믿습니다. 그들은 아기가 전능하신 하나님임을 믿지만 아들이 아버지라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아들이 아버지가 될수 있냐고 내가 묻는다면 나는 그들에게 질문하겠습니다. 어떻게 아기가 하나님입니까? 그들이 하나가 어떻게 둘이 되냐고 묻는다면 나도 같은 것을 묻겠습니다. 이것은 기묘합니다! 하나는 진정으로 둘입니다! 그분은 아버지이시며 또한 아들이십니다!

이제 요한복음 14장 8,9절을 보겠습니다.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이 말은 아들이 아버지임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이 말을 왜곡하여 아들은 아버지가 아니라 아버지의 대표자라고 합니다. 이것은 왜곡입니다. 만약 그 내용을 왜곡하지 않고 읽는다면 아들이 아버지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빌립이 아들에게 아버지를 보여달라고 구했습니다. 아들은 놀라며 말하길,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우리는 아마 빌립에게, “이사야서 9장 6절을 보지 못했습니까? 이 구절은 아들이 아버지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분이 여기에 계시는데 왜 아버지를 보여달라고 하십까? 그분은 아버지이십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그분은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요10:30).

이사야 9장 6절에는 아직도 명칭이 하나 더 있습니다. 다섯번째 명칭은 평강의 왕입니다. 이 구절에는 일곱 개의 명칭이 있습니다. 그분은 아기이고 아들이고 기묘자이고 모사이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고 영존하시는 아버지이시고 평강의 왕입니다. 한 구절에서 그분은 일곱 항목이십니다. 기묘합니다!

이제 고린도후서 3장 17절을 보겠습니다, “이제 주는 영이시니”(Now the Lord is the Spirit). 여기서 주님은 누구이십니까? 의심할 여지 없이 예수님입니다. 그러면 영은 누구입니까? 성령입니다. 성령 외에 다른 영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여기서 주님은 예수님이시고 그 여기서 그 영은 성령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제 주는 영이시니”라고 말합니다. 주 예수님이 영이시라는 것은 절대적으로 성경적입니다! 고린도후서 3장 17절은 주 예수님이 성령이시라고 말합니다.

이제는 고린도전서 15장 45절을 보겠습니다, “마지막 아담은 생명 주는(life-giving) 영이 되었나니”. 마지막 아담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입니다. 생명 주는 영은 누구입니까? 성령입니다. 성령 외에는 생명을 주는 다른 영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분명히 성경에서 마지막 아담으로 불리는 예수님이 생명 주는 영이 되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님이 또한 성령이라고 말하는 것은 성경의 분명한 계시에 따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분명합니다. “주 예수님은 아버지와 아들과 그 영이시고 그분은 바로 그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또한 주님이십니다. 그분은 아버지와 아들과 그 영과 전능하신 하나님과 주님이십니다.

계속해서 마태복음 28장 19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은 단수입니까 아니면 복수입니까? 단수입니다. 세 위격이 한 이름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 분 안에 세분이 계신 것입니다. 우리의 표현력이 짧기 때문에 적절하게 표현하기는 어렵습니다.

로마서 강해로 유명한 그리피스 토마스 (W. Griffith Thomas) 는 신학의 원칙 이란 이름의 그의 책에서 말하길, “‘위격’이란 용어 또한 가끔 반대를 당한다. 모든 사람의 언어처럼, 부적당함과 심지어는 긍정적인 오류로 비난 받을 수 있다. 분명하게 이것은 지나치게 강조되어서는 안 되는데 이는 이것이 삼신론으로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본체(substance)'나 ’위격(Person)‘이란 용어들을 사용하도록 강요받지만 이것을 인간의 본체나 개성과 동일시 해서는 안된다...삼일성의 진리와 체험은 신학 용어에 달려있지 않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한 하나님이지 세 하나님들이 아닙니다. 하지만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그 깊은 곳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세 하나님들로 생각합니다. 어떤 이들을 분명하게 이것을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세 하나님들이라고 말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이단적인데 이는 성경이 우리에게 하나님은 유일한 한 분이시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8장 4절은, “하나님은 한 분 밖에 없는 줄 아노라”고 합니다. 이사야 45장 5절은, “나는 여호와라...나 밖에 신이 없느니라.”라고 말합니다.

이제 에베소서 4장 6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너희 모두) 계시도다.”(One God and Father of all, who is above all, and through all, and in (you) all) “(너희) 모두 가운데”라는 말씀을 주의해서 보십시오. 하나님 아버지는 여러분 안에 계시고 우리 모두 안에 계십니다.

골로새서 1장 27절을 보겠습니다,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니 영광의 소망이니라”. 그리스도는 지금 여러분 안에 계신 영광의 소망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여러분 안에 계시고 아들 그리스도 또한 여러분 안에 계십니다.

요한복음 14장 17절을 보겠습니다, “진리의 영이...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성령 또한 여러분 안에 계십니다.

아버지가 우리 안에 계시고 아들이 우리 안에 계시고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심이 너무나 분명합니다. 여러분에 체험을 보면 몇 분이 여러분 안에 계십니까? 한 분이십니까 아니면 세 분이십니까? 한 분입니다! 네, 한 분이지 세 분이 아닙니다. 글자를 보면 세 분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의 체험에 따르면 한 분이 계십니다. 이것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According to letters, it seems there are three, but according to our experience, there is one. This is because the Father, the Son and the Spirit are one).

계시록 1장 4절을 보십시오, “...일곱 영과”. 일곱 영을 주의해 보십시오. 이제 4장 5절을 보십시오, “보좌 앞에 일곱 등불 켠 것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그리고 5장 6절은,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하나님의 일곱 영이 누구입니까? 성령입니다. 그러면 성령은 한 분입니까 아니면 일곱 분입니까? 한 분입니다! 그러면 왜 여기서 일곱 영이라고 했습니까? 우리는 성경을 우리의 지성으로 이해하면 안됩니다. 성령은 하나입니까 일곱입니까? 성령은 한 분입니다. 하지만 그분은 “일곱 영”이라 불리웁니다.

우리는 결코 우리의 지성으로 삼일성의 신성한 비밀이나 그리스도의 인격을 충분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충만히 이해한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어리석은 것입니다. 아무도 충만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인격의 문제는 지난 19세기 동안 모든 그리스도인 교사들을 괴롭혔습니다. 일세기부터 그리스도론의 문제가 교회를 괴롭혔고 교회를 분열시켰습니다. 아무도 그것을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데 이는 우리의 지성 안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때문입니다. 삼일성이 무엇인지를 감히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없습니다. 우리는 단지 성경에 따라 말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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